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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로스, 유교에 대한 우리의 자세(2)

by 방가房家 2009. 8. 8.

Ross, John, "Our Attitude toward Confucianism," <<The Chinese Recorder>> 18-1 (Jan., 1887): 1-11.


존 로스, 유교에 대한 우리의 자세

(글의 끝부분, 10-11쪽의 번역)

[10] 내 입장에 대한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덧붙여야 하겠다. 이 글의 목적은 유교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유교를 갖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제시하는 것이다. 유교는 단지 도덕 체계에 불과한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지식에 호소할지는 몰라도 가슴에는 감동을 주지 않는다. 가슴을 움직여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새롭고 거룩하고 진실로 고상한 삶, 그리스도 안에서 볼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이 본질적이다. 중국의 사회생활과 연결될 때 유교는 전능하다. 그러나 개인의 도덕 생활에 관해서는, 세네카에서 현명함을 보는 것처럼, 혹은 그리스에서의 아테네 철학자들이나 로마인들 사이의 키케로에서 올바른 감수성을 보는 것처럼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로마의 호레이스처럼 중국의 공자 제자들도 다음과 같이 진심으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선한 것을 알고 찬성합니다. 그러나 악한 것을 따릅니다.” 세계의 도덕 체계들은 자체로 죽어 있으며 살아날 수 없다. 그런 건강한 사람이 죽은 생선, 고기, 야채를 살아 움직이는 피로 바꾸듯이, 기독교는 독성과 무용함을 제거하고 죽은 유교, 불교, 도교를 영적인 양식으로 바꿀 수 있고 또 바꾸어야 한다. 즉 생명의 정신이 그것들을 건강한 피로 바꾸듯이, 도덕적이고 살아있는 종교 활동으로 이 커다란 나라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논의를 정리하도록 하자. 복음이 중국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전에는 지금 심각한 장애를 유발하는 많은 편견들은 제거되어야 한다. 내 생각엔 유교를 익숙하게 알고 현명하게 이용하는 것이 이 편견을 제거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선교사는 하느님의 신비의 훌륭한 청지기로서 유교를 기독교의 하녀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도덕성을 선호하는 감성이 고례(古禮)를 언급하는 사람들의 수만큼 있다고 한다면, [11]나는 그 진리의 조각들이 유효하다고 주장할 것이며 그들이 모든 종교와 도덕 체계 중 기독교만이 소유한 진리의 원숙한 완전성에 속한 것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스바 여왕이 준 것보다 더 귀중한 선물들이 유교 안에 있으며, 이것들은 왕 예수의 발 앞에 놓여야 할 것이다. 현인 공자는 무릎을 꿇어 경배할 것이다. 유교는 기독교라는 쟁기를 끌어 단단한 땅을 부스러뜨리며 맞설 것이고 맞서야 한다. 유교의 가르침은 그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누구도 죄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을 확신시켜 줄 것이고, 중국인의 마음에 “하느님을 향한 회개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신앙”의 필요성을 인식시키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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