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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소와 송아지에게 줄 것을 빼앗음

by 방가房家 2023. 5. 30.

며칠 전 <오마이뉴스>의 다음 기사를 읽고 초기 기독교 선교 상황이 떠올랐다. 

 
이 기사에서는 동물보호단체의 문구를 소개한다. “내가 아기에게 먹이려고 했던 젖을 모조리 빼앗았어요.” 우유는 소가 자신의 새끼를 먹이기 위한 젖을 강탈하여 나온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산물이 영양상으로도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이 이 기사의 요지이다.

우리나라에는 원래 우유가 없었다. 선교사들은 한국에 우유라는 식품이 없다는 사실에 매우 낯설어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은 동물의 젖을 사람에 먹이는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우유라는 음식에 대한 저항감이 컸기 때문에 선교사들은 우유 수급에도 차질을 빚었다. 일정 기간 수입해서 먹어야 했다.
다음은 조선혜 선생님을 통해 알게 된 사례이다. 노블 부인의 일기에서 “한국인의 이상한 행동”이라는 표제 하에 기술된 에피소드이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신선한 우유를 가진 소가 있는 강변에 잠시 멈추었다. 우리는 요리사를 보내 저녁과 다음날 아침에 쓸 우유를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거기서 며칠 머무를 요량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대답했다. “뭐, 소젖을 짠다고요? 안 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이고 이 소를 밭 갈고 짐 나르는 데 쓰고 있어요. 소와 송아지에게 줄 것을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둘 다 죽을 테니까요. 외국인의 작은 즐거움을 위해 그런 손실을 볼 수 없습니다.” 소젖을 짜도 괜찮다고 설득했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Wilcox Mattie Noble, <The Journals of Mattie Wilcox Noble 1892-1934> (Seoul: Institute for Korean Church history, 1993), 111.
 

이 이야기에서 한국인의 입장이 매우 잘 요약된 것은 아니겠지만, 대강은 전달된다. 소가 새끼를 위해 생산한 젖을 사람이 앗아가는 것은 소에게 못할 짓이라는 것이다. 더 나와 있지는 않지만 그렇게 부자연스러운 산물이 인간에게 유익할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충분히 연결될만 하다. 당시 한국인들이 생각은 현재 동물보호단체의 메시지와 잘 부합한다. 영양학적인 고려가 없을 뿐이지 ‘동물복지’에 대한 태도는 동일하며 그것이 선교사들의 서양 문화와 충돌을 일으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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