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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돌아다니다가

고대 한국 기독교 유물

by 방가房家 2023. 5. 27.

숭실대학교에 있는 한국기독교박물관에 갔다 왔다. 기독교를 전문으로 다루는 박물관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기독교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참 즐거운 구경이었다. 말로만 듣던 자료들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 뭐 눈에 한 번 들인다 해서 더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물리적 경험이 묘한 쾌감을 준다.

이곳에 있는 귀중한 전시물 중에서 하필 논란이 되는 것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한다.
박물관을 처음 들어서면 만나는 전시물이 경주에서 출토된 돌십자가, 성모상 모양의 조각, 그리고 십자가 문양이다. 십자가라고는 하지만 정말 그러한 지는 잘 모른다. 십자 모양의 돌조각이야 어디에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로 믿도 보면 그렇게 보이고,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보면 그렇지 않게 보인다. 사실상 다른 근거 자료 없이 육안으로 그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아래 그림에서 첫번째 것은 석가탑 해체 수리 때 발견되었다는 돌십자가, 두번째 것은 성모상으로 주장되는 조상, 세번째 것은 작은 십자가 문양 장식. 사진상으로는 세번째가 커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작은 장식이고 첫번째 돌십자가가 30cm 정도로 꽤 크다.)

몇몇 개신교 학자들은 이것들을 기독교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통일신라 시대에 우리나라에 경교가 전래되었다는 증거로 보는 것이다. 이 시기 당나라에 네스트리우스교가 경교라는 이름으로 전해져 꽤 융성하였기 때문에(장안의 대진경교유행비를 통해 알 수 있다), 당과 교류가 많았던 신라에 경교가 전해질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 그 학자들의 주장이다. 물론 가능하다. 그러나 한국의 경교 전래에 대해서는 어떤 기록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학문적 입장에서 볼 때 그러한 주장은 검증되지 않은 가설에 불과하다.

한국 기독교사를 기술한 책에서 신라의 경교 이야기가 책의 첫머리를 차지한다. 어떤 책에서는 경교 전래의 가능성이 있다고 기술하고, 어떤 책에서는 그러한 주장도 있다고 기술한다. 뉘앙스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난 기본적으로 그런 이야기가 한국 기독교사의 첫머리를 차지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굳이 부정할 수도, 그렇다고 증명할 수도 없는 이야기를 앞에 내어놓는 것이, 한국 기독교사를 천년 이상 앞당기려는 신학적인 욕심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주장을 낸 대표적인 학자가 숭실대 박물관을 실제적으로 건립한 김양선 박사이다. 그의 소장품이 박물관의 기초가 되었고, 돌십자가와 성모상도 그의 소장품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물관이 그 유물들을 전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논란의 전시물들은 숭실대 기독교 박물관의 개성으로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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