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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얻어배우는 것

옛 이스라엘 사람의 눈으로 창세기 1장 읽기

by 방가房家 2023. 5. 19.

(2006.1.22)

그랜드캐년 대학(Grand Cayon University)에서 마련한 월튼(John Walton) 교수의 강연에 갔다왔다. 대중 강연이라 주로 동네 노인분들이 많이 온 자리였다. 아시아 사람 하나 눈에 띄지 않거니와, 주변에 온통 백발들이었고 그 자리에서 내가 제일 젊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제목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갔던 자리였다. “옛 이스라엘 사람의 눈으로 창세기 1장 읽기” (Reading Genesis 1 with Ancient Eyes). 저술되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그 텍스트가 어떻게 이해되는가라는 문제는 그 책 이해에 핵심적이라는 게 당연한 듯하지만, 성서를 읽는 신자들에 있어서는 잘 고려되지 않는 부분이다. 성서는 하느님이 주신 책이고 시대를 뛰어넘어 진리를 전달해 주는 책이라고 생각되므로. 하지만 성서가 시대를 뛰어넘어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 책이 처음 주어진 것은 고대 이스라엘인들이었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성서를 인간이 썼느냐, 하느님이 썼느냐에 대해 논쟁하자는 게 아니다. 누가 썼든 간에, 그것은 히브리어라는 언어로 쓰여진 것이고 그 문화를 전제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는 것이므로.


월튼 교수의 강연은 생각보다도 훨씬 훌륭했다. 청중들의 저항이 있을 수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진행이 너무나 부드럽고도 철저해서 완전히 몰입될수밖에 없도록 한 좋은 강연이었다. 내용도, 전달 방식도, 배울 것이 참 많았다.
내용의 뼈대만 앙상하게 추려 놓는다.

1. 강연의 주 내용은 창세기 1장에서 사용된 ‘창조하다’의 뜻의 히브리어 “바라”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다. 지금 기독교인들은 창조한다는 것을 물질적인 창조(material creation)으로 이해한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느님이 뿅하고 어떤 존재를 만들어 낸 것으로 창세기 이야기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른바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 교리가 그러한 것이고, 하느님이 물질을 창조한 것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증명하느냐 매달리는 창조과학회식의 시도들은 여기서 더 극단적으로 나아간 것이고.
그러나 월튼 교수는 히브리인들의 존재 개념, 창조의 개념은 우리의 이해와는 다른 것이라는 점을 잘 설명해 주었다. 결론만 말하면, 히브리인들에 있어서 “바라”라는 말은 무의 상태에서 물질적으로 무언가가 튀어나온다는 개념이 아니라, 무질서한 것들에 질서와 역할이 부여되는 작업을 의미하였다. 물질의 유무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의미가 제대로 부여되었는가가 관건이 된다. 그는 이 창조 개념을 기능적인 창조(functional creation)이라고 부른다.

2. 창세기 1장에서 7일 동안의 창조 작업은 바로 세상 자체를 만드는 게 아니라 혼돈 상태에 있는 것들에 구분짓고 이름을 지어 질서와 체계를 부여하는 일들이다. 첫날에 한 일은 빛이라는 물질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밤과 낮을 구분하여 시간을 설정한 것이었으며, 다음의 진행들도 그렇게 진행된다. 세계에 대한 기능적인 이해는, 고대 근동 문화의 다른 곳에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3. 창세기 1장에서의 7일 동안의 창조 이야기는, 사실 하느님의 성전에 봉헌된 노래로 이해된다. 창세기 이 부분이 사제들에 의해 고도로 조직화된 문서라는 점을 감안하면, 설득력있는 주장이라고 생각된다.
참고: 이 사람의 관련된 내용의 강의를 다음에서 들을 수 있다. 화면 왼쪽 네 사람 중 가장 아래에 있는 그의 얼굴을 클릭하면 강의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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