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작업했던 번역 원고가 여러 선생님들의 수고 끝에 출판되었다.(출판이 물 건너갔다고 생각해서 원고의 일부를 블로그에 올려놓기도 했다: 빈 무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수년 전에 하청 받아 작업해놓았을 뿐 이번에 책으로 나올 때 신경도 쓰지 못하였는데, 내 이름이 번역자로 올라가 있어 나도 놀랐다. 번역자가 여러 명이고, 내가 번역한 분량은 4분의 1정도이고 끝까지 책임진 것도 아닌데 어부지리로 공역자가 되었다. 송구스럽다.
대놓고 할 소리는 아니지만, 전에는 하청 받은 원고만 번역했기 때문에 나도 출판된 책을 받아보고서야 책 전체를 처음으로 살펴볼 수 있었다. 또 대놓고 할 소리는 아니지만, 출판된 책을 보니까 이 책이 생각했던 것보다도 상당히 좋은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역시 내가 할 소리는 못 되지만, 내가 번역한 글들[크로산, 로버트 밀러, 마커스 보그의 글]이 책 중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는 것도 전체를 살펴보고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쑥스럽지만 광고글을 한 편 올린다. 이 책은 선배가 운영하는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것으로, 내가 보기엔 출판시장에서 묻힐 가능성이 95% 이상이다. (저자가 많은 책이라 혼란스럽지 않도록 더 잘 편집되었으면 하는 욕심도 있지만, 이 책은 내가 본 이 출판사 책 중 가장 편집이 잘 되었으므로 이 정도면 만족한다.) 그런 확신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광고하는 게 크게 꺼려지지는 않는다.
진짜 예수는 일어나 주시겠습니까 - 폴 코팬 지음, 방원일 외 옮김/누멘 |
이 책은 예수의 부활이라는 핵심적인 쟁점을 놓고 복음주의 학자들과 자유주의 학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을 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에 역사적 예수 연구서들은 한국기독교연구소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해 잘 소개되어 있는 편이다. 그래서 도미닉 크로산이나 마커스 보그라는 이름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이 책이 번역된 것의 의미는 <역자후기>에 잘 설명되어 있는데, 그것은 다른 견해를 가진 기독교 학자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성서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일반적 인식 사이의 간극을 자주 체험한다. 문자주의적 신앙이 강하다는 우리나라에선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연구 내용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런 내용이 보수적인 교인들에게 어떠한 반응을 일으키는가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기획은 바로 학문적 성과와 신앙의 충돌을 정확하게 짚어내는 것이고 그 시도는 꽤 성공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책에서는 보수적인 입장의 크레이그와 자유주의적 입장의 크로산을 맞붙이고 다른 토론자들을 통해 논의를 보충한다. 게임 하듯이 누가 이겼다고 손들어줄 수는 없겠지만, 꽤 세련된 논쟁을 통해서 서로의 입장을 명확하게 확인한다. 신앙에 관련된 사항 치고는 높은 수준의 생산성을 지닌 대화가 이루어졌다.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이 논쟁은 보수적인(혹은 복음주의적인) 학자와 자유주의적인 학자 간의 토론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런 표현은 약간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 식으로 좀더 세게 표현한다면, 이것은 학자들간의 논쟁으로 뭉뚱그리기보다는 신앙적 입장과 학문적 입장의 대립이라고 하는 것이 더 선명하다. 이것을 조금 더 밀고 나가면 스스로의 신앙을 되뇌는 신학적인 언어와 남을 인식하고서 발언하는 인식의(종교학적) 언어의 대립이 될 것이다. 이 대립이야말로 책의 논쟁의 핵심이 되리라.
그들이 나눈 대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짧은 대화지만 내재한 입장의 차이가 바로 드러난다. 신앙의 내용은 기독교 내부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라는 태도로부터 종교학을 끄집어내어 공격하는 비상한 감각의 신학자와 그것을 굳이 감추지 않으며 응대하는 크로산 사이에서 튀는 불꽃을 감상할 수 있다.
크로산: 제가 예수는 인간이면서 신이었다고 말할 때, 제가 ‘신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신앙의 행위입니다.……‘예수는 신이었다’라는 말은 그리스도교인들에 의한 진술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인으로서 말하고 있는 제가 예수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한다는 뜻입니다.……
버클리: 잠깐만요, 우리는 여기에서 비교종교학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저는 당신이 이런 후원을 받아가면서 여기서 도대체 뭘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군요.
크로산: ……버클리 씨, 우리는 비교종교학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저쪽에는 다른 종교들이 있습니다.
버클리: 아뇨, 우리는 그리스도교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크로산: 말을 막지 말아 주십시오.
[폴 코팬, 유기쁨 & 방원일 옮김, <<진짜 예수는 일어나 주시겠습니까?>>(누멘, 2010), 66-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