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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아파하는 종교적 방식들

by 방가房家 2023. 5. 15.

Ariel Gluckich, Sacred Pain: Hurting the Body for the Sake of the Soul (Oxford University Press, 2001), chap. 1.

제1장 아파하는 종교적 방식들(Religious Ways of Hurting)
 

1. 저자는 고통(통증)pain과 고난suffering을 구분한다. 고통은 일반적으로 세포 손상과 관련된 감각의 한 유형이다. 하지만 고통은 정신적이고 문화적 경험과 얽히기도 한다. 고난은 감각이 아니라 다수의 요인(고통 없는 것도 포함)에 대한 감정적이고 가치 평가적 반응이다. 자식을 잃는 것은 깊은 고난이고 슬픔인데, 이 고난은 파생적인 의미에서, 그리고 은유적 의미에서 고통스럽다. (‘pain’을 일단 고통으로 번역하였다. pain이 핵심어인 저서에서 그에 걸맞은 무게의 우리말을 대입한 것이다. 그러나 “The nature of suffering”이라는 책에서는 suffering이 고통으로, pain이 통증으로 번역된 바 있다. suffering에 대한 책이므로 비중 있는 단어인 고통이 선택된 것이다. 통증, 고통, 아픔, 고난 등의 어휘와 영어 개념이 일대일로 대응하지는 않는 어려움이 있다.)

 
 
 

2. 의학, 법, 군사 문헌 외에도 ‘종교문헌’에서 고통이 개념화되는 중요한 방식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책의 주장이다. 종교문헌에서 고통은 고난의 원인이고 문제라는 관점이 일반적으로 나타난다고 예상할 수 있다. 욥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다른 사례에서는 고통이 문제라기보다는 해결책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금욕 수련, 순교, 입문식의 시련, 통과의례, 샤먼의 수련, 축귀와 같은 전통적인 형태의 치유. 또 왕의 취임, 애도, 순례, 맹세, 축하 의식들 등에서.

 
3. 종교 문헌에서 “고통을 개념화하는 모델들”은 다음과 같이 유형화될 수 있다.(이하 내용은 긴 설명 없이 사례만 있어 이해가 까다롭다. 모델 간의 중첩도 흔히 볼 수 있다.)
(1) 사법 모델
형벌로서의 고통, 징벌, 빚으로서의 고통 관념이다. 고통은 어떤 인격적인 주체에 의해서 혹은 업과 같은 비인격적 메커니즘에 의한 징벌로 여겨진다. 유일신 전통에서는 아담과 이브 전승 때문에 징벌적 고통 관념이 널리 받아들여 진다. "내가 너에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너는 고통을 겪으며 자식을 낳을 것이다." 고통은 도덕적 세계 안에, 행위와 보상의 철통같은 논리 안에 놓임으로써 의미 없는 것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심지어 금욕주의 전통에서는 고통이 즐길만한 것으로 받아들여 지기도 한다.진실을 증거하는 고통 관념은 중세적 재판에 사용되었다. 수난이 법적 사실을 구성하는 신비한 방법이라는 관념은 유럽뿐 아니라 인도에도 널리 존재했다. 또 교육적 징벌의 논리도 이 모델에 속한다. 고통이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의 징벌이라는 생각은 성서에 여러 곳 등장한다.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다. 자식을 사랑하는 사람은 훈계를 게을리하지 않는다."(잠언)
 
(2) 의학 모델
몸의 치료와 마음의 치료가 갖는 유사성이 있다. 몸의 치료가 고통스럽듯이 마음의 치료도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금욕주의 수도승은 현재나 미래에 닥칠 영혼의 더 큰 고통을 피하기 위해 자기 육체를 괴롭혔다. "고통이 한계를 넘어서면 약이 된다.“
 
(3) 군사 모델
고통이 적, 초대하지 않은 손님, 환자 몸에 침입한 존재로 여겨진다. 그러나 금욕 전통에서는 이 관념이 전도되어, 육체에 대한 전쟁이 고통 경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고통을 전쟁 도구로 여기는 것도 비슷한 관념이다. 내적인 적에 대한 투쟁인 지하드 관념이 그 예이다.
 
(4) 운동 모델
고통 경험을 운동의 훈련에 비유한다. 이는 군사 모델보다는 부드러운 태도라고 할 수 있다. 극단적인 예로는 기독교에서 순교 현장이 운동 경기장으로 비유되는 경우가 있었다.
 
(5) 주술 모델
고통은 더 높고 순수한 상태로 변형시켜주는 연금술적인 힘을 지닌다고 여겨진다. 고통은 초인간적 힘의 신비한 근원이고 정화하는 힘이다. 여기에서 불탐, 때림, 절단 등의 행위와 의례 효과를 연결하는 관념이 나타난다. 악귀를 몰아내는 수단으로써 채찍질 사용, 연단鍊鍛하는 고통, 육체 혐오와 결부된 고통 등이 이 맥락에 속한다. 통과의례에서 아픈 사람을 나무, 바위, 벽을 통과시켜 귀신, 질병, 오염을 벗겨내는 실천이 나타나는 것도 고통에 대한 비슷한 이해이다.
 
(6) 함께 느끼는 고통 모델
남을 대표해서 겪는 고통을 겪는 대표적인 존재는 그리스도이다. 기독교 전통의 성흔聖痕이 이러한 고통으로 유명하다.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골) "예수께서도 자기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히) 신비가는 공유된 고통을 통해 그리스도와의 친밀함 느낀다.
한편 마녀의 공개 처형은 대중에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동일화 의례라는 점에서 공유되는 고통이다.
 
(7) 황홀경 모델

특히 신비주의 전통에서 고통이 마비되거나 황홀한 상태가 되는 경우가 있다. 샤먼 입문식에서 행해지는 자발적 고통도 이 모델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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