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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발제

키펜베르그, 애정 깃든 종교학사

by 방가房家 2023. 5. 11.

한 교수님이 종교현상학 강의에서 하시던 말씀이 항상 생각난다. 종교학은 백년이 지난 학문이지만 개념이나 이론의 전승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막스 뮐러나 틸레로부터 시작해서 숱한 학자들의 이름을 종교학사를 통해서 듣게 되지만, 우리가 배우는 것은 ‘폐기된 이론들’이다. 사회학에서 맑스, 베버, 뒤르케임의 고전 논의들을 이론 생성의 자양으로 삼아 발달시키는 것과 달리, 뮐러, 타일러, 매럿, 프로이트 등의 이론들은 종교의 기원을 설명하던 한때의 유행일 뿐 지금의 자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것은 최근에 엘리아데 이론을 어떻게 계승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그리 산뜻하지 않은 데서도 지속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키펜베르크(Hans G. Kippenberg)의 <<근대 종교학 발견하기(Discovering Religious History in the Modern Age)>>(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는 그러한 종교학사의 전승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서문에서 학문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누구도 종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자 하는 접근방법이나 계획을 일반적인 문제의 역사의 일부로서 다루려고 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해당 분야에서 가능한 이론이나 방법론들을 마치 진열장에 전시하는 것처럼 보여주는 데 머무를 따름이다.”(xiii)

최근에 종교학을 개관한 책들과 자신의 차이를 이야기할 때 키펜버그의 의도가 더 명확히 부각된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최근의 책 두 권은 다음 책들을 말한다. Mark C. Taylor (ed.), Critical Terms for Religious Studies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98); Willi Braun & Russell T. McCutcheon (ed.), Guide to the Study of Religion (New York: Cassell, 2000).]
 

“이 책은 ‘역사’라는 범주를 종교학에 다시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된다. 최근에 종교학의 주요 개념들을 선별하는 책 두 권이 출판되었다. 이 두 권을 검토하면서, 나는 그 책들에 ‘역사’와 ‘전승/전통’이 모두 빠져있는 것에 놀랐다. 역설적으로 ‘근대’만이 남아있었다. 이것이 이 책을 여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 같다.”(xii)

선배 학자들의 고민을 전승할 수 있는 기반이 되는 것은, 그들이 어떠한 맥락에서 이론을 제안하였는지는 이해하려고 하는 애정이다. 그의 책에서는 그러한 애정이 느껴진다. 그것이 이 책을 좋은 종교학사로 만든다.

“나는 학자들의 오류나 한계에는 관심이 덜하다. 그 대신 구원해야 할 것을 구원하고자 하였다. 쓸모 있는 것은 옹호하고, 틀린 것은 생략하고, 과장된 것은 목소리를 낮추고, 연결성은 강화하고, 중요한 언급들은 정확한 관련성 안에 위치시키면서, 나는 초기 종교학자들을 지금껏 일컬어지지 못했던 그런 존재들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즉 그들은 과거의 종교들이 여전히 미래를 함유하고 있는 근대 세계의 고전적인 이론가들인 것이다.”(x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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