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보”, 『대한크리스도인 회보』, 3-9, 1899.3.1
개신교인들 많은 고을에는 부임하지 않겠다는 재미있는 기사이다. 이만열의 지적(<<한국기독교수용사연구>>, 433)처럼, 이 기사를 통해 개신교인들이 관리들의 부정부패에 항거하는 의로운 모습을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불의에 대한 항거'는 '외세의존적 성격'과 동전의 양면을 이루는 현상임에 유의해야 한다. 개신교인들이 관리의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은 그들에게 비빌 언덕이 있음을 의미한다. 관에 복종해야 했던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개신교인들은 정부 말고도 다른 '힘의 근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개신교를 통해 찾을 수 있었고, 그 외부적 힘이 정부 권력에 대한 견제의 근거가 될 수 있었다.
이번에 새로 난 북도 군수 중에 어떤 유세력한 양반 한 분이 말하되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으니 영남 고을로 옮겨 달란다니 어찌하여 예수교 있는 고을에 갈 수 없느뇨. 우리 교는 하나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도라. 교를 참 믿는 사람은 어찌 추호나 그른 일을 행하며 관장의 영을 거역하리요. 그러나 관장이 만약 무단히 백성의 제물을 뺏을 지경이면 그것은 용이히 빼앗기지 아닐 터이니 그 양반의 갈 수 없다는 말이 그 까닭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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