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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_자료

2001년, 한국 개신교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by 방가房家 2009. 2. 1.

(부탁을 받아 2001년 개신교계를 정리했던 글이다.)


1. 분위기

주로 사건들, 그것도 교권을 중심으로 불거져 나온 사건들을 중심으로 정리된 한해의 모습은 우중충한 스케치가 될 수밖에 없다. 말없이 자신의 신념 체계를 실천해 나가는 많은 기독교인들을 좌절시키는 이야기들만 뽑아 나열하는 것은 하나의 왜곡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올 한해가 개신교인들에 있어서 좋은 일보다는 그렇지 않은 일들이 많았고, 자랑스러움보다는 자기반성의 시기였다는 데에는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물량에 관한 이야기부터 우울한 밑그림을 그려 나가자.

1990년대 중반부터 정체되기 시작했던 개신교의 교세는 21세기 들어서도 여전히 답보상태에 있다. 각 교단별로 교인의 수는 약간의 감소를 보이거나, 증가하더라도 자연증가율을 넘지 못하는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목회 현장에서 더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것은 어린이, 청년 교인의 두드러진 감소이다.

올 총회 통계 보고에 따르면 예장 합동측 교인수가 2000년에는 2백 32만 1천여명이었으나, 2001년에는 2백 30여만 명으로 집계돼, 0.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장 합동총회가 교인수 감소 현상을 보인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예장 통합측도 작년의 1.7%의 성장률에 이어 올해는 1.8%의 저조한 성장률을 보였다. (전체 교인수는 1.8%, 세례 교인수는 4.8% 성장에 그친데 반하여 안수집사와 권사는 각각 12%, 13.9% 늘었고, 장로도 6.5% 늘어 1만 7천 7백명이 되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에서는 교단 내 교회학교 아동부 숫자가 최근 3년 사이 6만 8천명이 감소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아동부의 숫자는 96년 18만 2천 명에서 98년 11만 4천명으로 해마다 2천명씩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2. 잡음들

2-1. 2000년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

2001년의 개신교계는 2000년 후반기의 악몽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대형교회 담임목사 세습 문제와 그에 대한 미디어의 비판적 보도로 인해, 한국 개신교회는 전에 없이  실추된 위신과 권위를 안고서 2001년을 시작하였다. 어찌 보면 2001년의 교회는 2000년이 남긴 것을 어떻게 해결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자기쇄신을 통해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여야 한다는 과제를 인식하면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1월 30일 교회 개혁과 관련된 성명, ‘희망의 새해를 염원하며’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교회가 교회 본연의 역할을 상실했을 때 교회뿐만 아니라 세속의 세계 역시 부패와 몰락의 길을 걸었던 지난 역사를 재확인하자. … 한국 교회는 지난 시절의 세속의 풍조를 좇던 온갖 구습을 과감히 떨쳐내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나 2001년을 정리하는 지금 시점에서 볼 때, 출발점에서의 각오는 공허할 뿐이다. 광림과 충현에서의 권력 이양은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무사히 이루어졌으며, 교단은 여러 가지 사안들에 대해서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확대시키는 모습을 보여 왔다. 교회가 내부적 조정 능력을 상실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 본연의 역할’을 이야기하는 애초의 다짐에는 모순이 내장되어 있다. 사실 교회가 세속의 부패를 걱정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세속이 교회의 부패를 걱정하고 견제하는 역할이 지금 시점에서는 요구되는 것이다.

일단 2000년으로부터 물려받은 것들이 올해 교계에서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살펴보자.


① 대형교회 담임목사 세습

광림교회는 “교회 사유화”라는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3월 25일 대물림 절차를 공식적으로 마무리했다. 성대한 ‘은퇴찬양예배 및 이취임식’을 통해 담임 목사직이 아버지 김선도 목사에서 아들 김정석 목사로 넘어간 것이다. 3월 22일 기독시민사회연대의 반대 성명 발표가 있었고, 예배가 이루어지던 시간 광림교회 길 건너편의 현대고등학교에는 세습에 반대하는 침묵시위가 있었지만, 정작 교권에서는 입장정리가 이루어지지 못했고 세습은 강행되었다. 한편 MBC 'PD수첩‘ 보도 내용에 대한 광림교회의 고소는 9월 26일 광림교회의 패소로 판결이 났다.

(한편 교회사유화에 반대하는 목사들의 활동도 있었다. 큰 교회를 이룬 목사들이 대물림 없이 나가서 개척교회를 만드는 것이 그것이다. 동안교회, 잠실중앙교회, 서울영동교회, 남서울교회 등이 그러한 유형의 세대교체를 보여주었다.)


② CBS 노동쟁의

2000년 후반에 시작된 CBS방송 노동 쟁의는 9개월여간의 극한 대립 끝에 265일만인 6월 26일에야 타결을 보았다. CBS는 11개 교단에서 이사를 파송하는 교회연합기관이고, 진보적 기독교계의 토대 위에 자리잡은 언론사로, 이 쟁의가 진행된 과정은 현 개신교계의 내부 조정 능력의 부재를 드러낸 것이었다. 교회연합운동이 각 교단의 이권 나누기에 의해 진행되는 와중에 평신도들을 배제하고 있으며, 기독교 진보권에 의해 형성된 ‘종로5가권’은 교단의 요직을 독점하면서 ‘종로5가 마피아’라는 비아냥까지 듣는 형편이다. CBS 사태는 타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개신교계는 시민단체와 언론의 비난을 감내해야 했다. 직원대표가 참여하는 사장청빙제 도입, 전문이사 영입, 경영자문위원회 구성 등을 뼈대로 한 정관개정안 통과 등의 내용을 담고 있는 타협안을 마련해 사태는 6월에 일단락되었지만, 그 이행을 놓고 최근에도 긴장이 조성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관련 사이트: CBS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2-2. 교단 내부의 잡음들

① 우선 90년대 말에 큰 문제가 되었던 총회장 선거의 문제점을 완화하려는 노력이 있었음부터 이야기해야겠다. 2001년 각 교단의 총회에서 가장 이슈가 되었던 것은 금권타락선거를 방지하기 위해서 이른바 ‘제비뽑기 선거제도’를 도입하느냐의 논쟁이었다. 이 제도는 올해 예장 합동총회에서 부분적으로 채택되어 부총회장을 선출하는데 사용되었다. 다른 교파에서도 주요 안건으로 거론되긴 하였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제비뽑기 제도는 일단 타락을 방지해보자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는 있지만, 동시에 한국 개신교계의 슬픈 자화상이기도 하다. 민주적인 선거를 스스로 포기하고, 자율적인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 지금의 사태를 타개하는 수단으로 인식되는 것이 교계의 현실임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② 교단간의 연합 사업에서 약간의 잡음들이 있었다. 2001년 부활절 예배를 놓고 일어난 갈등이 있었다. 원래 부활절 예배는 한국교회의 보수진영과 진보진영이 함께 해오던 행사로, 한국기독교교회엽의회(KNCC)측과 비NCC측이 대회장과 설교자를 번갈아 맡는 것이 관례였다. 그에 따라 NCC 측이 설교자 추천권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연합예배위원회 측에서 ‘설교자는 NCC에 배정하지만 선출은 자신들이 하겠다’며 추천권을 거부해서 양 측의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한편 한국찬송가공회의 임원선출 과정에서 있었던 논란은 교단들끼리의 갈등을 보여준다. 각 교단이 임원을 돌아가며 맡는 순서에 따라 올해 기독교대한성결교 총회가 파송한 임원을 장로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예장합동측 서기행 목사를 한국찬송가공회의 대표회장으로 선출한 일이 있었다. 이 때문에 기독교대한성결교와 예장합동측과의 마찰이 있었다.


③ 숭실대, 한세대, 한동대에서 일어났던 교내 분규들과 그에 대한 대처 과정에서도 개신교계는 난맥상을 보였다. 한세대의 경우에는, 총학생회가 조용기 목사의 사모인 김성혜 부총장의 퇴진 등을 요구하며 점거 농성에 들어가면서 촉발되었다. 한동대의 경우는 학교를 종교적 목적을 위해 파행적으로 운영했던 총장이 구속된 이후, 학교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 시민단체의 요구와 총장 구명운동을 펼치며 총장을 지지한 개신교계의 대립이 나타났다. 어윤배 총장의 연임 결정, 수업거부와 총파업, 교수 해임과 상황 악화, 어윤배 총장의 해임결정과 불복 등으로 이어진 숭실대의 경우도, 사태가 장기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재단쪽의 불분명한 태도로 인해 사태가 악화되었다.



3. 반응들

2001년에도 개신교는 사회적 사안에 대해 많은 발언과 반응을 보였다. 개신교는 일본 교과서 왜곡 반대, 고미츠미 총리 신사 참배 반대, 언론 세무조사 지지 등의 사안에 대하여 나름의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다른 종교와 연합하여 추진한 사형제도 반대는 가시적 성과를 얻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우자동차 노조 폭력 진압에 대한 반대 성명과 같은 경우, CBS 사태의 당사자이기도 한 개신교계로서는 사회적 발언에 설득력을 갖추기 힘들었다.


다음의 몇몇 사례들은 개신교가 다른 종교와의 관계에 있어서 대체로 폐쇄적인 태도로 일관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다음 사건들에서 다른 종교와의 관계는 대종교적 관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민 사회의 반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안들이었으며, 예와 같은 폐쇄적 태도가 일반인들의 입장에서는 지지를 얻기 힘든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모습은 종교적 사안이 공론화되어가는 과정을 반영하며, 그러한 상황에서 개신교는 이전과 같은 독단적인 모습을 고수하는 것은 이제 불리한 여론을 얻을 수밖에 없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① 여호와의 증인들 병역대체 입법 문제

성우 양지운씨의 아들이 집총거부로 수감생활을 하고 있는 이야기가 알려진 이래, 연초부터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의 실태가 공론화되기 시작하였다. 한겨레21의 집중적인 보도와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으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위한 대체입법 마련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었다.

이에 대해서 여호와의 증인을 이단으로 보는 개신교계에서는 찬반 논쟁이 있었는데,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대책위원회(위원장: 오성환 목사)는 6월 4일 성명을 발표하고 병역을 거부하는 여호와의 증인을 위한 대체복무제 입법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기총은 “소수 종교단체의 반국가적 행위를 종교의 자유와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미화시켜 특혜를 주는 행위는 인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여호와의 증인이 병역 기피의 도피처로 약용될 수 있는 만큼 대체복무법을 반대한다”고 밝혔다. 사회적인 문제가 이단대책위원회에서 다루어지는 모양새며, ‘반국가적’이라는 잣대로 인권 문제를 회피하는 주장은 일반 시민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거대 종단의 횡포로 비추어질 수 있었다.


② 단군상 훼손 문제

5월 17일 단군상을 훼손한 목사들이 실형을 선고 받았다. 사실 단군상 설치 문제는 단군의 종교성 여부가 걸려있는 복잡한 사안으로, 개신교계가 냉철하게 대응하였다면 유리한 여론을 형성할 수도 있었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폭력적인 배타성을 내세운 개신교의 대응은 일반인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더구나 재판 이후 개신교는 단군상 철거로 구속된 목회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규모의 궐기대회를 열어 시민들의 정서와는 괴리를 보여주었다. 경북기독교총연합회는 6월 3일 포항시 공설운동장에서 1만 3천여 명의 교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단군상 철거 및 구속자 석방을 위한 궐기대회를 개최하였으며, 구속 목회자 소속 교단인 예장고신총회는 6월 21일 광화문에서 ‘단군상 철거 촉구대회’를 개최하였고, 한국교회단군상대책위원회(본부장: 길자연)도 6월 26일 서울역에서 항의집회를 하였다. 

(참고 사이트: 

http://www.chrinet.com/html/dangun/dangunm.htm

http://www.samil-church.org/html/antidangun-movement.html )

 

③ 성남 일화 축구장 사용문제

개신교계에 부담으로 작용한 또 하나의 논쟁은 일화 축구단에 성남 연고권을 주는 문제였다. 이것은 성남시에서 일화 축구단이 통일교 관련 구단임을 문제삼아 경기장을 임대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촉발된 문제이다. 특히 성남시기독교연합회는 4월 7일 프로축구 개막전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성남 종합운동장에서 ‘일화축구단 성남유치 반대집회’를 강행하였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서라도 일화구단이 성남에 들어오는 것을 막겠다는 입장”이었지만, 축구계를 비롯한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처사였다. 한편, 축구팬들과 개신교계의 공방은, ‘붉은 악마’라는 응원단 명칭에 대한 일부 개신교인들의 반대와 ‘백의 천사’라는 응원단에 대한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④ 주5일 근무제 논쟁

주5일 근무제 시행을 놓고 개신교 내부에서는 찬반 논쟁이 있었다. 주5일 근무는 분명 교회 운영에 영향을 미칠 것이며, 그 악영향을 우려하는 목사들에 의해 주로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들은 주5일 근무가 비성서적(6일을 일하고 하루 쉬라고 하셨기에)이며, 국가경쟁력이 약화되고, 주말에 교회가 비는 서양 꼴이 날 것이라는 논리를 주로 제기하였다. 한기총에서 이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주5일 근무에 반대하는 성명을 냄으로써 논쟁은 더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되었다.



4. 성찰, 반성적 태도

교세의 침체, 크고 작은 비리와 이권 다툼들, 경색된 교권의 반응. 이러한 상황에서 많은 교인들은 자신이 헌신하던 교회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교회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나름의 방식으로 교회에 목소리를 내고자 한 사람들도 있었다. 평신도들의 연합 활동은 어느 해보다도 활성화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개신교 평신도들이 모여 2월 28일 기독교 평신도 301인 3·1 선언문을 발표한 것이다. 그들은, “Δ담임목사직 세습, 교회 재정 사용의 불투명성 등 한국 교회의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대한 회개와 반성 Δ평신도들의 민주적 권리 존중을 통한 민주적 교회공동체 운영 Δ목사 장로 임기제 도입 Δ헌금 바로 사용하기 운동” 등을 촉구하였다. 여기에 참여한 이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최근의 교회의 문제에 대응하여 평신도들이 조직화되었음을 볼 수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의 투명한 재정운용과 개혁을 부르짖었던 ‘교회사랑장로모임’, 충현교회 세습과 무원칙을 비판하고 있는 ‘충현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광림교회 세습과 불투명한 재정 운용을 비판하고 나선 ‘광림사람평신도연합’을 비롯해, MBC PD수첩 보도에 항의하기 위해 형성된 ‘한국교회언론대책위원회’를 반대하는 기독교청년연대모임(복음과상황, 새벽이슬, 기독시민연대), 스포츠투데이에 대한 반대 모임인 ‘안티스투’, ‘CBS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뉴스앤조이, 기독시민사회연대평신도협의회, 기독교윤리실천위원회.


교회 세습을 반대할 때의 양상에서 잘 보이듯이, 이들 평신도를 규합하는 주된 매체는 사이버 공간이었다. 여느 시민운동과 마찬가지로 사이버 공간은 사안에 대한 여론을 모아 현실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였고, 종교 문제의 공론화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음을 올해의 개신교계는 보여준다.


많은 개신교인들이 자기반성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상황은 자연스레 종교학의 발언이 경청될 수 있는 배경이 되었다. 사실 종교학의 발언이 경청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 후반기부터였다. 당시 ‘소장 종교학자’라고 명명된 그룹의 목소리가 중량감 있는 매체에 실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종교문제의 공론화”가 사회의 호응을 얻는 바 있었다. 2001년은 그러한 목소리가 더욱 많은 개신교인들에게 설득력을 지닌 해였다.


그러한 분위기를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예수는 없다]의 성공과 오강남이라는 스타 종교학자의 탄생이다. 대형 서점에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이 책의 독자들은 다른 이들이 아니라 자기반성의 계기를 찾는 개신교인들이었다. 도서판매보다 더 뜨거운 것은 책을 읽은 이들의 반응이다. 감신대 쪽에서 이 책의 내용을 진지하게 토론하는 “그런 예수는 없다”라는 모임을 개최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목회자들과 평신도들 사이에서 이 책의 문제제기는 많은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 이 책은 20년 전에 출판된 [길벗들의 대화](혹은 5년 전에 재출간된 [열린 종교를 위한 단상])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그러한 반응은 저자가 놀랄 정도의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올 초 화제를 모았던 조영남의 [예수의 샅바를 잡다]는 20여 년 전의 [어느 한국 청년이 본 예수]를 보완해서 출판한 것이었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비교적 명확하다. 그것은 개신교의 지형 변화이다. 개혁의 필요성, 그것은 2001년도 개신교에 있어서 상투적인 문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금껏 의존해오던 교회 내적 기준이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종교학의 발언은 절실한 필요성을 얻게 된다. 그리하여 2001년은 어느 때보다도 개신교인들이 종교학의 발언에 귀를 기울였던 해가 아닌가 생각된다. 2001년을 마무리 짓는 시점에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올해 개신교인들이 종교학에 주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과도기적 상황에서의 일시적 유행일까, 아니면 종교학에 대한 관심의 출발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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