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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존스, “한국의 종교 발달”(1891)

by 방가房家 2009. 9. 14.
선교사 존스가 한국 종교에 대해 가장 초기의 글로, 훗날 그가 가졌던 원숙한 견해들과 대조되는 면이 많아 흥미롭다. 풋풋한 선교사로서의 모습이 살아있는 글로, 이교도 국가로서의 한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해외 선교지에 실린 글이라는 맥락도 감안할 필요가 있는 글.

Jones, George Heber, “The Religious Development of Korea,” <<Gospel in All Lands>> 16 (Sep., 1891).
존스, “한국의 종교 발달”(1891)


한국의 종교 발달은 주목할 가치가 있는 현상이다. 데몬숭배(demonolatry), 불교, 조상숭배는 다른 나라에도 나타나는 동일한 현상들, 공통 근원이나 유사한 기원을 분명히 해주는 종(genus)의 표지를 공유한다. 그러나 이들은 공통점 외에도 한반도에서 수세기동안 발달해온, 그래서 한국 고유의 특성을 나타내는 구분되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모두 구별되고 잘 규정된 진정한 세 숭배들로, 서로 가까이 존재하고 있으면서도 부조화를 이루지는 않는다. 한국인은 대다수 사람들이 진정한 이교적(pagan) 관용성을 지니고 자신을 세 전통 모두의 성원으로 인식하면서도 어느 전통으로부터도 출교당할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보다 높이 숭상되는 “이교적 관용성”의 좋은 예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역사에는 종교의 우월성을 확보하려는 무력 시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불교를 부정하는 듯이 보이는 불교의 타도는 정치적 근거를 가진 것으로, 타도된 왕조와의 동일시 때문에 일어난 것이지 종교적 선동으로 인해 일어난 것은 아니다. 이들 세 숭배의 교리, 실천, 교의가 어찌되었든 간에, 역사상 어느 한 숭배가 위대한 진리가 되어 다른 숭배들의 존재와 양립 불가능하게 된 일은 없었다. 그 결과 한국인은 조상 숭배에서 종교 의식을 취하고, 불교 기도의 효과를 갈구하며, 산신령(mountain demon) 사당에서 정성스레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양심상 이단에 빠진다는 죄책감조차 전혀 갖지 않는다.
한국의 다양한 종교현상을 살펴보면서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은 언급된 세 숭배 중에서 첫 번째만이 고유의 토착적인 것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불교는 수세기 전에 인도에서 직접 소개되었거나 티벳에서 소개되었다. 조상숭배는 아마 일본, 중국, 그리고 동방의 다른 나라들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근원에서 유래한 것 같다. 그러면 우리는 첫 번째로 로마 가톨릭 저자들이 데몬숭배(demonolatry)라고 부르고 사람들에게는 미신으로 알려져 있는 숭배를 살피도록 하겠다.

미신들(the superstitions)

이 용어는 겉으로는 경멸적인 용어가 아니지만, 체계화된 숭배 바깥에 존재하는 전통적인 신앙의 방대한 총체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물론 거만한 유학자는 불교나 거의 쇠퇴한 도교에도 이 표현을 사용할 것이지만 말이다. “미신”은 엄청난 수의 신들, 데몬들, 반(半)신들, 그리고 수세기에 걸친 자연 숭배의 유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뒤틀리고 얼룩진 상상력에 의해 하늘, 땅, 바다가 초자연적인 존재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들은 만물에 편재하는 다양성을 지니고 있고 선이나 악을 위한 그들의 힘은 예배를 요구한다. 이 어두운 영혼들에게 나무를 스치는 바람 소리는 나뭇가지에 사는 정령들의 목소리가 될 것이다. 연못이나 호수의 검은 심연은 화복(禍福)에 힘을 지닌 물의 정령의 용으로서의 형태로 비칠 것이다. 산 정상에는 많은 수의 만신전을 이루는 관료 신들이 산다. 이들은 산자와 망자의 운을 모두 받아쓴다.
나무들은 지역의 신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가장 선호되는 자리이다. 그리고 신목(神木)들도 도처에 발견된다. 길가를 따라서, 그리고 특히 도시나 마을 근처에는 천조각과 종이가 가지에 펄럭이고 밑동에 큰 돌무더기가 있는 나무가 보인다. 여기에 있는 신격을 모시는 방법은 한두 개의 돌멩이를 무더기 위에 올려놓거나 선물을 가지에 매놓는 것이다. 이 행위의 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의 거의 한결같은 답변은 “옛날부터 그렇게 했어요.”였다. 정령의 특별한 도움이 필요할 때는 의식이 더 과시적이다. 일반적으로 여성들로 된 무리가 나무 아래 모여 예배를 드린다. 쌀밥과 선택된 음식으로 된 제사가 큰 돌무더기 위해 놓인다. 신이 음식의 정수 혹은 영적인 요소를 취하는 동안 가벼운 종이가 나뭇가지 아래서 태워지고 기원하는 복을 위한 기도가 드려진다.
산신령에 대한 예배는 일반적이다. 화려한 사원에서부터 나무 밑동의 단순한 돌무더기에 이르는 사당이 산곡대기에 이르는 길에 있고 여행자는 경배를 드린다. 이 산 사당들 중 한 성소에는 흰 천과 붉은 천으로 주름이 드리워져 있고 신령의 그림이 안에 있다. 신령은 보통 높은 계급의 관복을 입고 수행원을 거느린 할아버지로 그려진다. 이 그림은 경배의 대상이 되어 그 앞에는 예배 때 향이 태워진다. 사당이 단순히 돌무더기인 경우에는 신목에서 본 장면이 반복된다. 하지만 비는 사람은 돌무더기에 제물을 올리기 전에 항상 침을 밷는다. 이것은 오래 전에 사라진 뱀 페티쉬의 유물이라고 이야기된다.
물의 정령들은 모든 샘물, 폭포, 호수, 강에 나타난다고 이야기된다. 가장 유명한 것은 황해 근처 연안호의 용이다. 이 상상의 존재는 이 나라 지역의 식량 공급을 조절하고 믿어지며, 그를 기쁘게 하는지 여부에 따라 풍요나 재앙을 내린다고 한다. 그에 관련된 훌륭한 이야기들이 있다. 또 특히 가뭄 때 그를 달래기 위해서는 정성스러운 제사가 보통 관리의 감독 하에 드려진다.
한국인의 사상과 철학 근저에 있는 이원성 때문에, 거대하고 물질적이어서 성화된 주제들과 한국인들이 신앙 대상으로 주장하는 내적이고 영적인 존재 사이에는 잘 규정된 구분이 존재다. 우리는 이처럼 영혼의 가장 고귀한 재능이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대상에 경배하는 매춘행위를 통해서 영혼이 영원하신 하느님에 정박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니기 때문에 생기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보게 된다. 그러나 자연 숭배가 한국인의 도덕적 본성을 왜소하게 하고 격하시키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상상해낸 창조물의 염탐 때문에 그의 마음은 수시로 공포로 가득차게 되고, 급기야는 축귀라는 기괴한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질병의 신들은 한국인의 만신전의 마루 위에 더러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고, 천체가 신격화된 존재는 천장을 흉하게 하고 있고, 귀신들과 악의 망령들은 우상들 머리꼭대기에 앉아있거나 벽에 대고 날갯짓을 하고 있다. 반(半)신들도 적지 않다. 인간의 신격화는 한국에서 잘 알려져 있는 원리이다. 큰 전쟁의 영웅, 아득한 고대의 현인, 재앙의 시기에 백성들을 돌본 이들은 모두 자리를 갖고 경배를 받는다.

불교

종교 세계에서 이루어진 이들 토착적 창안들에서 눈길을 돌리면 불교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삼국 시대에 도입된 불교는 거의 1500년 동안 사람들에게 자리를 잡아왔고, 지금은 활력을 잃은 나이가 되어 점차 무(無)와 비존재의 열반으로 가라앉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 불교의 확신이 충분히 강력해서 신자들에게 선교의 열정과 열의를 불어넣었을 때, 불교는 한반도에 보급되어 삼국 중에 남단에 있는 신라까지 교리를 전달하고자 시도되었다. 추방당하고 박해받는 반대에 직면하고, 온갖 고달픈 상태에 처하고, 급기야는 전설에 따르면 선교의 씨앗이 된 순교자의 피까지 보게 되었다. 마침내 백성들에 들어가는 갈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자, 불교는 고려 왕조에서 융성의 정점에 이르기까지 점차 세력을 늘려갔다. 그 시절에 불교의 권력과 영향력은 최상이었고 나라가 거의 무정부상태에 이르도록 승려에 의해 휘둘렸다. 이들은 일상생활과 국가 사안의 권력을 찬양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종교적 특성을 도외시하고 정치 세계에 들어가 그곳을 지배하게 되었다. 승려들은 왕의 궁궐에 모여들어 중요한 국정을 돌보고 전시에는 군대를 모집하고 마침내는 승려의 소생을 왕좌에 앉혔다.
이 악화된 세속화된 사제권이 백성에 끼친 영향은 극단적인 도덕적 타락이다. 역사는 당시가 공적 도덕이 가장 낮았다고 묘사한다. 이교의 도덕 감각에도 충격적인 부정, 폭력이 그 시기의 부끄럽게 행해졌다. 전성기의 불교 사제권은 간단히 말해 인격화된 비도덕성이었다. 정절, 금욕, 자기부정을 부여하는 불교 숭배의 교의들은 난폭하게 그리고 광범위하게 위반되었다. 사원들은 사회와 정체체에 큰 상처가 되어, 사회 전체의 최종적 해체를 위협하는 도덕적 타락을 키웠다. 그러나 그것은 500년 전 일이다. 변화가 일어났고, 국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국가의 그러한 상태를 종식시켜야 했다. 불교가 종교 영역을 정치 영역으로 바꾸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불교를 거의 멸절시킨 그 개혁은 정치적인 개혁이었다. 현재 왕조의 위대한 창건자는 그 자신이 당대의 현명하고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그는 아우게이아스 왕의 외양간을 치우는 일에 착수했고, 그 앞에서 죄 많은 정권과 사제권은 같이 몰락했다. 그 이후로 불교는 오욕의 이름이 되었고 승려는 도성에서 추방되었으며 백정, 노예, 장인 등보다 약간 나은 하층계급을 이루었다. 
한국 불교의 교의는 한반도에 1500년을 머무르는 동안 자신의 독특한 특성도 갖게 되었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른 나라와 거의 동일하다. 불교에는 성상, 보살, 불경, 염불, 묵주, 단식, 그리고 다른 요소들이 있다. 산에는 많은 절이 세워져 있고 전체 승려들의 수는 만 명에서 삼만 명 정도로 다양하게 헤아려진다.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나 불행한 사람들이 자신의 복 받지 못한 상태를 개선하는 기도를 드리러 자주 절에 간다. 그러나 이런 신앙은 한때 강력했던 이 종교를 부분적으로만 떠받치고 있을 뿐이다. 대중적 포교는 허용되지 않으며, 승려의 신분은 대개 우연히 모집된다. 한국 불교의 현재 상태와 사업을 요약하면, 불교가 지닌 내재적 세력이나 힘이 어찌되었든 간에, 승려들만이 그 교리를 공부하면서 열반을 추구하고 그러면서 간혹 돈이 들어오면 기쁘게 받고 있지만, 백성들은 차갑고 표정 없는 우상의 얼굴들만 접한다. 
우리는 이제 언급한 세 숭배 중 가장 강력한 마지막 숭배인 조상숭배를 살필 것이다.

조상 숭배

이것은 국가의 교의이다. 주요 신봉자는 왕족들이고, 법률과 관습이 연합하여 전 백성에게 이 숭배를 부과한다. 이 숭배에는 정교한 의례, 오래되고 존중되는 윤리 규범, 그리고 약간의 교리들이 있다. 이것은 인간 영(spirit)의 불멸성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세 영혼이 존재한다는 영의 복수성(複數性)도 가르친다. 죽음 이후에 이 영들 중 하나는 조상 위패에 들어가고 두 번째 영은 무덤을 차지하며 세 번째 영은 망자의 궁극적인 목적지로 간다. 그러므로 죽은 자의 장례식은 한국인에게 깊은 종교적 의미로 가득 차 있으며, 한국인의 가장 고상한 특성 중 하나인 기능, 즉 공경과 숭배를 행하도록 한다. 죽음 직후에 사체는 머리를 동쪽으로 해서 안방에 놓이고, 친지들이 흐트러진 복장과 산발한 상태로 곡하러 모여든다. 곡은 사흘 동안 계속된다. 사망한 날 밤에는 불교에서 유래한 기이한 풍습이 보인다. 이것은 ‘초혼’(招魂)이라고 알려져 있다. 친척들이 망자가 입던 옷을 들고 밖으로 나가서 성(姓)을 세 번 부르고 돌아와서 옷을 입으라고 청한다. 대중적인 믿음에 따르면 망자의 세 영혼들은 세 정령(spirit)들―지하에서 올라와 영들을 염라대왕 앞으로 데려가는 사자(使者)들―에 의해 옥에 갇힌다고 한다. 친척들은 옷을 지붕으로 던지며 집으로 급히 들어가지만, 곧 다시 나타나 지하에서 온 방문자들을 위한 제사를 드린다. 이 제사상에는 사자들이 요기할 음식과 노잣돈으로 사용할 돈 꾸러미 셋이 있다. 사흘 후에 시체는 집 마루 아래나 문 바로 바깥에 임시로 매장되며, 망자의 사회적 지위에 따라 두 달에서 여섯 달까지 그곳에 머무른다. 자식들은 수수한 상복을 입고 삼년 동안 모든 사회활동―최소한 이론적으로는―을 중단한다. 적당한 시기에 시체를 파내어 최종적인 장지에 묻는다. 비석이 새겨지고 건립되며 그 때부터 신주와 묘소는 정성스런 예배와 공경의 현장이 된다.
조상 숭배의 기저에 있는 원리는 효도이다. 사람의 마음은 아버지를 갈망한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한국인들은 자신의 영혼의 갈망을 삶에서 따뜻한 관계를 가졌던 이를 통해 충족시키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다. 이것은 망자를 잊지 않으려는 그의 방법이다. 시대에 의해 규정된 삶에 대한 그릇된 체계에 갇힌 채로, 그는 죽음으로 과거와의 연결이 끊어진 이후에도 그 성스러운 연결을 지숙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든 밝은 진리를 종합해 판단한다면, 조상 숭배의 참된 성격은 메마른 저주임이 드러날 것이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차가운 죽음에 영향을 미치려는 이 음산하고 씁쓸한 숭배는, 죽음의 한기를 영혼 그 자체 안으로 들여보낸다. 이 교리에는 사제들이 없다. 그것의 성소는 죽음의 암흑에 싸여 있고, 그것의 제단은 묘소이며, 그것의 숭배심은 유족의 슬픔이다. 분명히 다른 어느 곳에서도 이교도의 마음의 부조화가 이 숭배처럼 분명하게 드러난 예는 없을 것이다. 이 숭배는 효성을 고양한다는 미명 하에 하느님의 영혼을 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극단들이 만나 엉켜있다. 이것은 유교 규범을 윤리로 지니고 있으면서 하느님을 교리화하고 인간에 예배드린다. 로마인들은 황제만을 신격화했다. 반면에 조상 숭배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일관되게 이 원리를 끝까지 밀고나가 전 남성들을 높이 받들게 되었다.

전망

한국은 이교도의(pagan) 삶, 이교도의 종교, 이교도의 윤리가 있는 이교도 국가이다. 실제 상황을 표현하는데는 세계 전역을 돌아다니신 한 선교사의 말씀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그 분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인도의 이교는 비열하고, 중국의 이교는 반항적이고, 일본의 이교는 절망적인데, 한국의 이교는 무관심하며, 아프리카의 이교는 자신만만하다.” 한국을 묘사하는데 ‘무관심’보다 좋은 용어가 없다. 열정, 열의, 확신을 절에서 볼 수 있긴 하지만, 백성들 대다수는 회의적이고 무관심하다. 낡은 체제는 대중들에게 영향력을 상실하였고 도덕성은 상업적 가치에서 유지되고 있다. 한국인은 자신이 항상 환경에 잘 적응해왔다고 여긴다. 이교의 늪은 정체되어 있고, 늪에선 죽음이라는 도덕적 독기(miasma)가 솟아오른다. 도덕의 현재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서 바울이 이교 세계를 묘사했던 것을 인용할 필요가 있다. 회칠한 무덤은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마태복음> 23:27]
종교가 없는 나라는 기독교에게 기회이다. 법률, 관습, 전통, 신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영혼은 그가 속해 있는 것들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로 남아있다. 그렇다면 한국인에게 진리는 가장 영광스러운 경험으로 다가오는 예수 그리스도 그대로이다. 즉 그들이 처음으로 맛본 종교인 것이다. 진리는 그의 마음을 통해서 가슴과 영혼으로 가라앉고, 이해를 뛰어넘는 표현 불가능한 평화의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를 가득 채울 것이다. 우리는 이 경험이 이미 어느 정도 이루어졌음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지만, 우리는 현재 힘든 상황에 직면해 있기도 하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이라고 해도―그리고 신앙이 한반도 왕국에서 영광스러운 미래를 갖는다고 해도―이곳에서 이교는 견고할 것이다. 그것은 습관, 관습, 법률, 전통, 사상, 의지에 단단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사회, 가정, 정치 조직의 기반이다. 그것은 삶의 가장 외진 영역에도 영향을 주어 삶을 메마르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힘의 많은 부분을 상실하였다. 가장 강력한 권세의 날은 과거의 것이고, 황금 시기는 지나가 버렸다. 오랫동안 백성들을 미혹해 왔기에 이제 쫓겨날 때도 되었다. 기독교가 선교지에 들어올 때 도덕적 타락은 종식된다. 무관심의 분위기는 영원히 지속될 수 없다. 어떤 수고와 슬픔도 성공에 이를 것이며, 최종 결과가 지연되는 시간이 아무리 길지라도, 한국인들도 영혼의 진정한 재산인 복음의 이로움과 축복을 보고 복음의 진술에서 모든 어려움들을 해결하는 날이 올 것이다.

1891년 6월 23일, 한국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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