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례문화62 1930년대 개신교 결혼 1930년대의 결혼식 사진이다. 이전에 내가 쓴 논문에서의 주장 중 하나가 한국의 개신교 결혼식은 혼합적인 의례라는 것이다. 이 사진의 복장은 그 혼합적인 양상을 잘 보여준다. 신부의 옷에 주목할 것. 하얀 소복이다. 거기다 하얀 면사포를 썼다. 면사포는 서구식 결혼을 상징한다. 내가 알고 있는 자료에 의하면, 20세기 초반 한 미국 여선교사가 “진짜 개신교식 결혼”을 올리게 해달라는 아버지의 부탁을 받고 고민끝에 면사포를 만들어 씌웠다. 그렇게 시작된 전통 복장에 면사포를 씌운 신부 복식은 이후 수십년간 유지된다. 복장의 문제에 대해서는 1920년대의 개신교 의례 지침서에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예복이 신구교체시기를 맞아 일정한 제도가 없이 혼잡무장한 것이 유감스러움. 그러나 세계통용예복을 사용할 .. 2009. 1. 11. 산타클로스가 지금의 모습으로 되기 전 을 읽으며 얻게 된 산타클로스 그림들. 그가 지금의 모습으로 탄생하기까지의 변천사. 1. 잘 알려져 있듯이, 산타 클로스는 성 니콜라우스의 변형으로 탄생했다. 그 변신의 시점은 1800년대 중반이다. 이 그림은 산타 둔갑 직전의 성 니콜라우스의 모습을 보여준다. 1810년의 삽화이다. 착한 아이에게는 선물을 주고 나쁜 아이에게 벌을 준다는(울고 있는 아이는 아마 매맞은 걸로 보인다) 주제가 나타난다. 하지만 아직 니콜라우스는 고색창연한 패션을 간직하고 있다. 주교복을 입고 있고 손에 홀을 들고 있다. 중세 성인의 도상적인 특성 그대로이다. 대중적 상상력을 통해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기 까지는 몇십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2. 이것은 1848년의 도판이다. 산타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가 막 생겨난 시점이다. .. 2009. 1. 11. 동아일보 크리스마스 기사들(1924-1939) 여기에는 그림 파일을 올리기가 여의치 않아서 엠블에 올린 것을 링크해 놓는다. 동아일보 크리스마스 기사들1(1920년대) 1920년대는 크리스마스가 서양 풍습으로서 소개되는 시기이다. 크리스마스 풍습에 대한 상식들이 소개되는 기사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아직은 낯선 서양 풍속으로, 전사회적으로 크리스마스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있지는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비슷한 시기의 조선일보 기사들도 대동소이하다. 동아일보 크리스마스 기사들2(1930년대초반) http://blog.empas.com/bhang813/25244004 1930년대 들어서 한국 사회에 크리스마스는 익숙한 날이 되어간다. 기독교와 상관없이도 즐기는 날이 되어간다. 이것은 1930년대의 대중들의 소비적 감수성이 급속히 확산되었던 것과 관련이 .. 2007. 12. 13. 크리스마스 관련자료(1910년 무렵) *1910년 YMCA 성서 교실의 크리스마스 풍경 * 밴틀리트가 서재필 부인에게 보낸 크리스마스 카드(1911년) * 1910년 양복점 광고 * 1912년 "경절을 당하여" *"크리스마스 유래"( 1924년) 2007. 12. 13. 크리스마스 조선일보 기사들(1934-39) * 조선일보_1934년 12월 09일 서양의 크리스마스 풍습을 소개하는 사진들. 소비지향적인 크리스마스가 도입되는 분위기. *조선일보 1934년 12월 19일 "아가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복학으로 고생하던 아이도 기뻐한다는 설명. 복학의 뜻은, 복학(腹瘧)〖한의학〗어린아이에게 생기는 병의 하나. 배 안에 자라 모양의 멍울이 생기고, 추웠다 더웠다 하며 몸이 점차 쇠약하여지는 병이다. ≒별복03(鼈腹)‧별학(鼈瘧)‧자라배. *조선일보 1934년 12월 19일 크리스마스 소개글 * 조선일보 1934년 12월 25일 "질거운 크리스마스" * 조선일보 1936년 12월 4일 "크리스마스 티켓 금지" * 1936년 12월 25일 "토산 크리스마스" * 1937년 11월 30일 "가장 무희 엄금" * 193.. 2007. 12. 13. <<동광>>(1926)의 크리스마스 관련 기사 ** 두편의 기사가 실려 있다. 앞의 추호(秋湖)의 글은 상당하다. 서양의 풍속에 대한 상당한 경험과 조예를 자랑하는 글이다. 크롬웰의 크리스마스 금지를 언급할 정도면 역사적 지식도 상당히 뛰어나다. 마지막에 한국의 크리스마스 풍속이 점차 세속화되어감을 지적하고 있는데, 아직은 심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잡지명 제8호 발행년월일 1926년 12월 01일 기사제목 「크리스마스」 종소리, (메리크리스마스와 노오크리스마스) 필자 秋湖 추호 「크리스마스」 종소리, (메리크리스마스와 노오크리스마스) 秋湖 The time draw near the birth of Christ; The moon is hid, the night is still; A single church below the hill Is p.. 2007. 12. 12. 크리스마스 조선일보 기사들(1924-1932) 크리스마스에 관련된 1925-1932년 조선일보 기사들 1. 1924년 12월 24일 2. 1925년 12월 25일 3. 1926년 12월 24일 4. 1926년 12월 26일 5. 1927년 12월 20일 6. 1932년 12월 24일 2007. 12. 2. 1933년의 크리스마스 선물 1933년 12월호에는 크리스마스 선물에 대한 기사가 실려있다. 가격별로 어떤 선물이 적당한지가 남녀별로 안내되어 있어 당시의 선물 풍속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인터넷으로 표기 안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당시 표기법대로 입력하였다. 일본식 영어 "푸레센트"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사용되었던 말이라고 생각된다. 예를 들어 1960년대 활동한 여성 트리오 이시스터즈의 크리스마스 앨범 제목은 였다. “크리스마스 푸레센트 -BOYS에게”, 7-12 (1933년 12월): 90-91. 사나이에게는 안 보내도 관계업다지만 그래도――당신의 귀한 이에게 이런 것이 어떳습니까? ● 1,2원 정도 우선 담배――그러나 마코-를 보내기는 무엇하니까요. 2원은 잇서야 합니다. 피죤 한 통은 보내야 보낸 보람이 잇슬것입니.. 2007. 12. 2. <윤치호 일기>에 기록된 크리스마스 1933년 12월 24일 일요일 크리스마스가 서울 여성층에게 또 하나의 석가탄신일이 되었다. 여성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여성들이 관심을 갖는 건 크리스마스가 쇼핑을 위한 또 하나의 핑곗거리이자 기회라는 사실이다. 김영섭 씨 말로는, 일본인들은 벌써 크리스마스를 그루시미마쓰(クルシミマス=苦しみます)라고 신소리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윤치호, 김상태 편역, (역사비평사, 2001), 605-6. 1935년 12월 25일 수요일 오늘은 크리스마스다. 미국인이나 영국인이, 조선 기독교인들이 크리스마스의 신성함에 대해 자기와 똑같은 감정이나 느낌을 가졌으면 하고, 아니 이 신성한 시즌을 기뻐했으면 하고 기대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그건 분명히 가당치 않은 일이다. 감정이 원숙해.. 2007. 11. 30. 1893년 크리스마스 ** 초기 선교사 중 한 명인 노블 부인의 일기에서 번역한 내용. Mattie Noble, "1893년 12월 25일,"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1993), 36-38. 189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날이 저물어가고 있다. 이 하루의 즐거움을 위해서라면 나는 큰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는 크리스마스를 위해 여러 날 계획을 짜고 준비하였다. 내가 이번 달 집안일을 돌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우리 모두--홀 박사 내외, 아서 박사와 나--를 위한 식사를 맡는 일이 내게 주어졌다. 나는 자두 푸딩의 레서피를 구해 며칠 전에 만들어 놓았다가, 오늘 데워서 멋진 드레싱을 입혔다. 그리고 가득 채운 오리고기, 호박 파이, 감자 등을 먹었다. 저녁 식사는 성공이었다. 손님이 너무 많아.. 2007. 11. 27. 개신교 초기 장례에 대한 신문자료 “강형댁여집씨 별세한 일”, 『대한크리스도인 회보』, 1898.11.30 초기 개신교인의 장례 모습을 보여주는 기사이다. 강여집씨는 개신교 의료의 혜택을 받은 이로, 신실한 신자로 지내다가 "천당간다"는 기쁨을 표현하고 죽었다. 비록 오래 지속되지는 않지만 당시 개신교가 죽음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일으켰음을 보여준다. 장례식에는 기도와 찬송이 부가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인천 교우 강여집씨는 봉교한지 육 년이오 나이는 사십 칠세라. 육년 전에 신병이 있어 정동 시병원으로 병 고치러 갔다가 하나님 지덕과 구주지은으로 병이 나음을 문득 깨닫고 생각하되 내가 육신의 병뿐 아니라 영혼의 병이 더욱 심히 크게 들었으니 하나님께 빌어 내 영혼의 병을 고쳐 주옵시기를 간절히 빌고 그때부터 회개하고 주를 밤낮 생각하기를.. 2007. 6. 22. 3. 의례문화 총론 한국 종교 의례문화에서 개신교가 가장 두드러지게 일으킨 변화는 개신교식 결혼식의 보급과 크리스마스의 소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에서 도입된 결혼은 간편하다는 장점을 부각시키며 ‘신식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는 전통 결혼의 복잡한 절차와 준비 때문에 부담을 느꼈던 사람들에게 환영받았다. 물론 신식 결혼이 곧 개신교 결혼이 아니지만 개신교 결혼에 의해 촉발된 새로운 형태의 의식임은 부인할 수 없다. 개신교 결혼 문화는 새로운 의식의 도입이라는 측면 외에도 신자들 간의 혼인이라는 새로운 풍속도 만들어냈는데, 이 점은 초기 자료에서부터 잘 드러난다. 한편 제사와 장례는 개신교가 전통 문화의 영향을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제사의 경우, 개신교는 처음부터 거부의 태도를 명확히 하였지.. 2007. 5. 31. 참혹한 소문 이 자료에는 비신자와의 결혼이 재앙을 가져다주는 죄악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재앙을 전달하는 매개가 도깨비라는 전통적인 상징에서 마귀로 대체되었다는 점도 특이하다. 서울 동막 사는 복복남씨가 금월 초에 혼인하였는데 혼인한 지 불과 삼일에 난데없는 불이 주야로 그치지 아니하고 안팎으로 여기저기 불꽃이 일어나 십팔차를 하매 다행히 불이 나는 대로 끄고자 하였으나 동내 사람들의 말이 신부가 들어올 때에 도깨비가 따라 왔다하고 비방이 일어남에 복형제집에서도 도깨비 일인 줄 알고 그 신부를 쫓아 보내였는 고로 목사 몇 분이 이 소문을 듣고 가서 형제를 일변으로 위로하며 일변 권면하여 그 신부를 도로 데려다가 살게 하였더니 과연 그 형제가 그렇게 여겨 당일에 신부를 도로 데려다 놓고 여러 목사와 형제들과 자매들이 .. 2007. 5. 31. 거꾸로 된 산타클로스 영어 회화 수업을 들은 이들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한국의 풍습을 영어로 이야기하고, 그것이 미국 관습의 무엇과 비슷하다는 초보적인 비교의 행위를 영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흔히 하게 된다. 이 글에서 아직 한국에 소개되지 않은 산타클로스와 한국 풍속이 재미있게 비교되고 있다. 저자 미상, "A Reversed Santa Claus," The Korean Repository 4 (Dec., 1897): 456-457. 거꾸로 된 산타클로스 서울에 있는 우수한 영어 학교에 한 한국인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가르치는 일은 재미가 있고, 또 그 친구는 자주 나에게 와서 자기 공부가 얼마나 늘었는지를 보여주려고 한다. 하루는 그 친구가 나에게 교재를 읽어주다가 산타클로스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발견하고는 이 .. 2007. 5. 31. 개신교와 제사문제 개신교와 제사문제 18세기 말, 천주교라는 새로운 사상이 민중들 사이에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진산사건’에 비롯되는 제사문제가 야기되었다. 이렇듯 새로운 사상, 타문화의 유입・수용과정에서는 고유 전통이나 민족 감정과의 갈등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 뒤 다시 조선에서 제사문제가 큰 논란이 된 것은 20세기 초, 즉 일제 강점기이다. 이때는 일찍이 천주교를 민중 스스로가 수용하고 국가권력에 의한 탄압이 가해진 것과 달리, 일본의 국가권력에 의해 신도(神道)가 장려되는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난 것이었다. 이 시기의 제사문제를 논하려고 할 때, 키워드가 되는 것으로서 1) 조선총독부에 의한 포교규칙 및 신사사원규칙의 발령, 2) 동아일보에서의 논쟁과 삼종신기 모독사건, 3) 신사참배의 거부와 수용 등을 들을.. 2007. 5. 30. 이전 1 2 3 4 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