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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문화

추수감사절이라는 미국 명절

by 방가房家 2023. 5. 28.

이전에 논문에서 한국의 추수감사절에 대해 쓴 적이 있었다. 그 때 나에겐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는 추수감사절이란 게 도대체 어떤 날인지를 알지 못했다는 것. 둘째는 지금 한국 교회에서 그 날이 어떻게 모셔지는지를 잘 몰랐다는 것. 두 번째 문제는 여전하지만, 미국에 온 후로 적어도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이 어떤 날인지에 대해서는 조금씩 감각을 얻어가고 있다. 그동안 내가 얻은 느낌을 요약해서 말하자면 추수감사절이야말로 가장 미국적인 날이라는 것이다. 내 자신이 개신교 의례의 일환으로 이 날을 서술했고, 우리나라에서 개신교회에 의해 이 날이 소개되고 지켜지기 때문에 이 날을 기독교의 맥락에서 생각하지만, 사실 이 날은 미국적 가치가 구현된 날이다. 이 날을 종교라는 맥락에서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기독교보다는 로버트 벨라가 말한 시민 종교(civil religion)라는 측면에서 보는 게 정확할 것이다.



이 날의 역사를 간단히 보는 것만으로도 이 날의 성격이 상당히 파악된다. 인터넷에서 흔히 검색되는 정보로 추수감사절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한 국민일보 기사가 있다. 그 내용을 조금씩 인용한다. (http://blog.empas.com/cyrustak/4575199 에서 인용. 보다 상세한 정보로는 http://blog.empas.com/cyrustak/4843490 )
추수감사절은 미국의 건국 신화의 한 토막에서 유래한다. 다음과 같다.
경건한 삶을 추구하던 청교도 102명은 영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1620년 메이플라워호에 올라 60여일의 항해 끝에 동년 11월20일 신대륙 플리머스항에 상륙했다.그해 겨울 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생존자들은 이듬해 가을 곡식을 수확할 수 있었다.이에 청교도들은 인디언들을 초대해 추수한 곡식과 채소, 과일 등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음식을 나눠먹었다.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효시다.

이 유명한 일화에는 미국 역사의 한 역설이 서려 있다.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인들은 농작물 재배 기술을 가르쳐주고 식량을 원조해 준 북미 원주민들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2,3년 사이에 전멸했을 것이다. 첫 해 겨울 거의 3분의 1의 청교도인들이 굶어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었으니 이것은 과장이 아니다. 자신들을 살려준 북미원주민들과 첫 추수감사절을 함께 보낸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자신이 살려준 백인 친구들에 의해 북미원주민들이 멸절되는 아메리카의 역사의 시작을 상징하는 게 바로 이 날이라는 걸 생각하면 가슴이 시리다.

청교도인들은 무엇에 감사했는가? 그들은 음식을 내려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낯선 땅에서 자신들을 생존하게 해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그 감사의 더 정확한 내용은, 자신들에게 미국이라는 새로운 땅을 내려주신 하느님에 대한 감사이다. 미국인들은 하느님에 의해 “선택받은 민족”이고 아메리카라는 “약속된 땅”을 부여받았다는 것. 그래서 아메리카는 하느님이 주신 가나안이고, 그 곳에 미국이라는 “새 이스라엘”을 건국한다는 것. 그것이 미국 종교사에 면면히 흐르는 주제 의식이다. 물론 이러한 종교 의식은 미국의 건국 정신과도 밀접히 연관이 된다. 이 주제 의식이 초기 청교도의 이 신화적인 역사를 후의 추수감사절 성립과 연결시켜 준다.
초대 대통령 워싱턴은 1789년 헌법 제정을 축하하면서 그해 11월26일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포했다.하지만 3대 대통령인 제퍼슨은 추수감사절이 영국의 관습이라는 이유로 폐지했다.추수감사절이 다시 지켜지게 된 것은 링컨 대통령에 의해서다.링컨은 남북전쟁의 조기 종결과 국민의 단결을 위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감사일로 공식 발표했다.그후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9년 감사절을 11월 셋째주 목요일로 변경했다.
추수감사절은 미국 건국과 더불어 선포된 날이다. 그나마 한동안 지켜지지 않다가 1800년대 후반에 링컨에 의해 다시 선포되었다. 이 날은 국경일이다. 우리나라의 개천절과 광복절을 합쳐놓은 것과 같은 성격을 갖는 국경일이다. 정치적으로 제정된 이 날이 미국 교회에서 수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웠으리라 생각된다. 미국 교인들에게 미국은 단순한 정치 공동체가 아니라 하느님의 섭리와 직결되는 신성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추수감사절의 성립은 청교도들의 역사와는 거의 250년 이상의 간격을 갖는다. 그래서 추수감사절 때 행해지는 “전통”들은 옛날의 역사와 별 상관이 없다. 추수감사절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디테일로는 음식이 있다. 칠면조 고기, 호박 파이, 으깬 감자 등으로 구성되는 식단이 있다.(http://thanksgiving.allrecipes.com 참조) 언제부터 그 음식들이 전통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가 아는 것은 17세기 청교도들이 있었던 북미 동부에는 칠면조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과 호박도 그들과 연관이 없었을 것이라는 정도이다. (추수감사절을 구성하는 다른 디테일로는 댈러스 카우보이 팀의 미식축구 경기를 관람하는 것이 있다. 이 경우에는 그 기원을 알 수 있을 거라 생각된다.)
위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날짜를 잠시 바꾸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은 추수감사절의 다른 중요한 측면과 관련된다.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까지, 그러니까 11월 말부터 12월 말까지의 기간은 쇼핑 시즌이다. 온 매장에서 40-50%의 폭탄 세일이 펼쳐진다. 나를 포함한 미국의 소비자들은 이 시즌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것은 물론이고, 그 동안 미루어 두었던 품목들을 구매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 한 달간 일년 매출의 30% 이상이 올라간다. 추수감사절 날은 모든 매장들과 백화점들이 쉬지만, 바로 그 다음날 백화점들이 일제히 폭탄 세일을 시작한다. 소비자들은 매장 문 열리기를 새벽부터 기다리고 있다가 아침에 문을 열면 매장으로 뛰어 들어간다. 물건을 집어드는 그 날의 미국인들의 행복한 모습은 참 인상적이다. 위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추수감사절을 11월 셋째 주로 변경한 것은 한 달밖에 안되는(?) 이 쇼핑 시즌을 한 주 늘리려는 것이었다. 이 시도는 상인들의 로비에 의한 것이었다. 그러나 몇 년 안되 미국인들의 반발로 이 날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현재는 11월 넷째 주에 지켜지고 있다.


추수감사절이 한국 교회에서 지켜진 것은 1900년대 초기부터이다.
한편 한국교회가 추수감사절을 지키게 된 것은 1904년 제4회 장로회 공의회에서 11월10일을 감사일로 선포한 뒤부터다.1914년에는 각 교파 선교부 회의에서 미국 선교사의 최초 입국일인 11월 셋째주 수요일을 추수감사절로 선언했고 이후 수요일에서 주일로 바뀌게 됐다.

내가 논문에서 서술한 것이 바로 이 부분에 관한 것이기에, 긴 언급은 하지 않는다. 다만 한가지 눈여겨 볼 것은 도대체 ‘무엇에 대해 감사하는가?’이다. 이 날은 미국 선교사의 한국 입국을 감사하기 위해 지정되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미국 선교사들은 분명히 청교도 조상들을 떠올렸으리라 생각된다. 그들의 조상들이 하느님이 아메리카를 그들에게 준 것을 감사했듯이, 선교사들은 한국이라는 선교지를 수여받은 것에 대해 감사를 올렸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한국 교회들이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설교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냉정하게 생각한다. 한국의 추수감사절이야말로 한국 교회가 얼마나 미국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감사는 숭고한 주제이고 할 말도 많다. 하지만 그 의미와 설교들은 추석 때 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한국 추수감사절의 초기 역사에 대해서는 이 글을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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