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종교학회는 세계종교학회(IAHR)가 아니라 미국종교학회(AAR)이다. 행사 대 모이는 학자들 쪽수가 네 배 이상 크다. 미국종교학회(AAR)는 성서교육자협회(NABI)로부터 발전하여 나온 학회이다. ‘성서교육자’라는 말에서 드러나듯 신학적 지향을 지닌 구성원들이 많고, 이들은 지금 종교학회에서도 7~8할을 차지한다. 그래서 미국종교학회에는 종교학과 신학이 공존한다. 그것은 미국 대학에 설립된 종교학과들(특히 명문 사립대)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미국종교학회와는 달리 종교학의 사회과학적인 지향성을 갖고 운영하는 곳이 북미종교학회(NAASR)이다. 위베(Wiebe)는 북미종교학회의 구성원으로, 비판적인 시각에서 “미국종교학회는 신학적 지향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은 미종교학회 회장들의 취임연설들을 분석하여 그것들이 얼마나 ‘종교학적’인가를 가리고자 한다. 결론은 대부분 성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쪽 학회의 사람이 상대편 학회의 ‘정체성’을 규명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이 글은 정치적이다. 정치적이긴 하되 왜곡된 내용은 아니다. 이런 글은 미국 종교학회 간의 분위기 파악용으로 필요하다고 하겠다. '이어지는 내용'은 아래 글을 요약한 것이다.
Donald Wiebe, "A Religious Agenda Continued: A Review of the Presidental Addresses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Method & Theory in the Study of Religion>> 9-4 (1997).
위베는 최근에도 비슷한 글을 발표했다. 이 글의 후속작으로, 이 글 이후인 1997년부터 2006년까지의 회장 연설을 추가로 분석한 것이다. 다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너희들의 신학적 성향은 여전해”라고 말하는 글인 것 같다. 전작이 자기 학회에서 간행되는 학술지에 실린 데 반해, 이 글은 상대편 학술지인 JAAR에 실린 것이 흥미롭다. 좀더 싸움을 거는 맛이 느껴지지 않을까?
Donald Wiebe, "An Eternal Return All Over Again: The Religious Conversation Endures," <<Journal of the American Academy of Religion>> 74-3 (2006): 674-696.
1. 1964년에, 전미 성서교육자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Biblical Instructors, 이하 NABI로 약칭)가 미국종교학회(the American Acdemy of Religion, 이하 AAR로 약칭)로 바뀌게 된다. 이러한 협회에서의 학회로의 전환은 미국 대학에서의 종교 교육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고 이야기된다: “AAR의 출현은 대학 교육에서 전통적인 개신교와 인문학의 지배력이 상실되었음을 알리는 동시에,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초가 확립되었음을 말해준다(Hart)”. 혹자(或者)는 “정규 대학 교육에서 규범적인 종교적 가르침이 완전히 제거되었다(Marsden)"고 개탄하기도 한다. AAR은 종교에 있어서도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의 과학적 규범이 적용되기 시작하였음을 알리는 지표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저자 위베는 이러한 통념에 대해서 의구심을 제기한다. 그는 NABI(53년부터 63년까지의 강연)와 AAR(64년부터 93년까지)의 역대 회장들의 취임 강연들을 하나하나 분석한다. 그러한 작업을 통해서 학회의 방향성이 무엇이었는지 검토하고, 그것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이 학문을 지향한 것이 아니었음을 말한다.
2. NABI는 기독교 교육자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지니고 있었던 집단이다. 협회의 회원들은 종교적 관심을 지닌 종교인들이었다. “NABI의 으뜸되는 목표는 동료 간의 친교를 제공하고 성서의 가르침과 종교를 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데 있다(Printon, 1953)”. 교육의 목표는 대학 공간에 알맞은 이성화된 형태의 기독교 신앙을 제공하는 것이다. 기독교 전통을 보존하고 계승한다는 의미에서 NABI는 “보물을 보관하는 역할(Ross, 1954)”을 담당한다.
종교 교육은 사실을 가르치는 일이라기보다는 가치 판단에 관계된 일이다. 이 가치 판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판단 아래 놓음(Eckart, 1956)”으로써 가능해진다. ”종교 교사의 임무는 학생들로 하여금 진리, 가치, 신앙의 사안을 분별케 하고, 궁극성의 문제와 삶의 의미를 분간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다(Brubaker, 1959)“.
3. 초기의 NABI는 교회일치적인 에토스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60년대 들어 회원들의 신학적, 혹은 교파적 다원주의 입장이 부각되면서 그러한 에토스는 이완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회원들의 종교학에 대한 관심도 확산되고 있었다. NABI는 다원주의 사회에 더욱 어울리는 공적인 이미지를 추구하였고, 또한 학문 세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마련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NABI에서 AAR로의 개명(改名)이 이루어졌다. 종교학회라는 간판으로 바꿔달기는 했어도, AAR 초기에는 이름만 바뀌었지 그들이 추구하는 관심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신앙에의 헌신, 학문적 독립성, 공적인 직업으로서의 의무의 세 가지를 자신의 소임으로 삼았다.
4. 저자 위베는 AAR의 취임 강연들을 세 가지로 범주화 한다.
(1) 전통적인 신학적 관심에서 이루어진 강연. 전체 스물여덟 개의 강연 중에서 열 세 개가 이 범주에 속한다. [Price(1965), Burtchall(1971), May(1975), Willams(1976), Meagher(1978), Raitt(1981), Hart(1984), Dillenberger(1987), Clark(1990), Priest(1967), Robb(1968), Downing(1974), Scott(1986)] 이 강연들에서는 전통적인 신학적 관심, 특정한 사회적 인종적 사안에 대한 신학적 판단, 신학적 활동을 변화시키기 위한 신학적 제안에 대한 논평, 종교 연구가들의 종교적, 신학적 작업에 대한 개인적 평가 등의 이야기가 이루어졌다.
이들의 강연은 대체로 설교 형식을 띤다. 미국 건국 이백주년을 맞아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신학적인 소임을 역설한다든지(May, 1975), 이론과 실천의 합일을 강조하여 다원주의 사회에 대처하는 통합적인 시각을 형성할 것을 촉구한다든지(Scott, 1986), 종교 연구에서 추상적 경향이 강화됨에 따라 학문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개탄하였다(Hart, 1984). 이들의 논의는 매우 구체적인 신학적 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행동 신학의 성서적 전거를 추적하는 작업(Meagher, 1978), 페미니즘이 기독교의 기반을 침해할 것에 대한 우려(Raitt, 1981), 초기 기독교의 수사법에 대한 이해(Clark, 1990) 등의 논의가 이루어졌다.
(2) 학회 성원들이 추구하는 활동의 성격을 규정하고자 하는 강연. 세 개에 이에 속한다. [Neusner(1969), Long(1973), Doniger(1984)] 이들의 논의는 신학적인 관심에 의해 지배받지 않았다. 이들은 방법론적인 논의를 전개하였으며, 종교학자는 종교학에 대한 객관적, 과학적 접근에 함몰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을 견지하였다. 뉴스너는 종교학자들이 지닌 종교적 성향, 즉 그들이 속한 종교 공동체에 대한 관심에 대해서 처음으로 비판적으로 언급한 사람이다. 그는 종교적 확신을 고양시키던 당시의 교육에 대해서 반대하였다(Neusner, 1969). 롱은 화물 숭배에 대해 강연하면서, 서구 종교를 중심에 놓는 학문적 태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종교학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기보다는, 타자를 소외시키지 않고 타자에 자신이 관련되어 있음을 인식하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역설한다(Long, 1973). 한편 도니거는 타자의 신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통해서 종교학의 과학적 객관성의 역할에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녀는 종교학이 학문으로서 지녀야 하는 게임의 룰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면서도, 종교학이 지녀야 하는 진정한 종류의 객관성이 있음을 말하였다.
(3) NABI 시절의 주제를 특징짓는 전통적인 경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강연. 전체 스물여덟 개의 강연 중에서 열 두 개의 강연이 이에 속한다. [Welch(1970), Michaelson(1972), Ogden(1977), Gilkey(1979), Clebsch(1980), Kaufman(1982), Smith(1983), Marty(1988), Wilken(1989), Berling(1991), Neville(1992), Wyschogrod(1993)] 쉽게 일반화하기는 힘들지만, 이들은 주로 종교학과 신학의 인식이 어떠한 반식으로 관계맺음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이들에 따르면, 종교학은 그들이 연구하는 이들의 영적인 삶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학문이어야 한다. 종교학(study of religions)과 종교적 연구(religious study)를 엄격히 구분하면서도(Ogden, 1977), 이들 학자들은 종교 자료가 지니는 독특함을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종교학이 그 의도에 있어서 종교적인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궁극적 실재에 대한 관심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종교학의 자료들은 다른 분과의 대상으로 분해되어 버릴 것이다. 종교적 관심과 종교학적 관심을 통합시킴으로써만 종교학은 존속할 수 있다(Gilkey, 1979)". 그러므로 종교학은 규범적인 문제와 인간 공동체의 가치를 다루게 되며(Kaufman, 1982), 과학적인 연구라기보다는 타문화를 통해서 자신에 대한 배움을 얻어나가는 과정이다(Smith, 1983). 위쇼그로드에 따르면, 의미와 진리의 문제는 분리불가능하고, 따라서 사실 분석으로만 환원된다면 종교 연구는 불가능해진다. 그러므로 진리와 의미의 통합체인 ficciones를 통해서 종교적 내러티브를 이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Wyschogrod, 1993).
한편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강력히 주장한 학자도 둘 있었다. 종교학이 종교-신학적 관심으로부터 과학적 관심으로 자신의 문제의식을 차별화시켜왔음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는 강연이 있었으며(Welch, 1964), 신학의 종교학으로의 침투를 경계하는 강연도 있었다(Clebsch, 1980).
5. 논의를 정리하면서 위베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①대다수의 강연들이 그 성격에 있어서 신학적인 색채를 벗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부분이 종교 현상을 기술하고 설명하는데 자신을 한정짓지 않고, 종교적인 문제에 관여하고자 하였다는 것이다. ②열 편 정도의 강연은 종교적 문제에 관여하는 기존의 방식을 유지하려는, 강력한 호교론의 특성을 지닌다. ③AAR은 아직도 근본적으로는 종교적-신학적 조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AAR이 종교학에 대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접근의 입장을 확고하게 취하는데 실패하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한 점에서 AAR는 그것의 전신(前身)인 NABI와 근본적인 차별성을 획득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