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권상로(민족문화대백과사전)라는 이름을 근대불교사에서나 친일 행적에 관한 언급에서 얼핏 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글을 통해 만난 권상로에게는 학자로서의 힘이 느껴졌다. 종교사에 대한 그의 강의는 결코 무시할 만 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된 이론을 자료로 하는 것이긴 해도, 그 내용을 한국의 자료를 갖고 전개하는 하는 수준은 당대 한국 학자 중에서는 최상급이라고 느껴졌다. 다음은 <<조선종교사>> 앞부분을 중심으로 간단히 메모한 것이다. 다음 파일은 <<조선종교사>>의 몇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권상로는 <<조선종교사>>에서 종교학과 종교사를 구분하면서, “종교학이라 하면 일반 민중의 심리에 기인하여 어떠한 사상, 신앙 또는 연구가 어떻게 발달되어서 어떠한 종교를 형성하였다는 것을 논술하는 것”(1)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저작에서는 “종교학적 방법인 어원, 정의, 기원, 귀취(歸趣) 등”은 하지 않겠다고 한다. 종교학을 언어적인 작업으로 규정한 반면에, 자신이 서술하고자 하는 종교사는 “어떠한 종교의 기원, 유포, 성쇠 또는 사회민중에게 신앙의 협흡(浹洽: 물이 물건을 적시듯이 널리 고루 퍼지거나 전하여짐), 이익의 부여가 여하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러한 도식적 구분이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실제 작업에서는 그 둘이 함께 적용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종교사적 방법을 이념적인 헤겔적인 것과 반헤겔적인 것으로 나누고, 반헤겔적 방법으로 언어학, 고고학, 토속학을 든다. 여기서 언어학은 “고대 종교를 비교언어학에 기인하여 연구하는 방법”으로 “범어의 연구로부터 고대 인도종교를 소회(溯洄: 배를 저어 흐르는 물을 거슬러 올라감)”하는 것을 예로 들고 있는데 이것은 막스 뮐러의 작업을 말하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어서 그는 ‘고대인의 종교사상’(2장)을 서술한다. 태초의 인류가 자연현상에 대한 두려운 생각을 갖고 천체에 대한 신앙을 시작했다는, 전형적인 진화론적 설명이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에서 단순히 자연을 숭배하는 것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갖게 되고 하늘과 사람 사이의 매개를 추구하여 종교인이 등장하였다는 설명은 주목할 만하다. 이 부분에서 권상로는 도덕경 등 동양 문헌의 예들을 들어서 논의를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양의 자료를 사용하여 서양의 종교기원론을 소화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조선종교사>>의 본문에서 권상로는 삼국지 기록과 단군 신화를 중심으로 고종교(古宗敎)에 대한 자세한 고찰을 시작한다. 이를 중심으로 ‘고종교(古宗敎)의 편영(片影)’으로 소도, 신지 비사, 현묘결, 조의선인(早衣仙人). 풍월주(風月主), 팔관회, 무격과 같은 다양한 종교현상들을 검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