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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의 종교, “저기”의 종교, “어디에나”의 종교

by 방가房家 2023. 5. 3.

Jonathan Smith, "Here, There, and Anywhere," Relating Religion. 발제문.

“여기”의 종교, “저기”의 종교, “어디에나”의 종교

고대 후기의 지중해 연안 종교들의 지형을 서술하기 위한 유형론을 제시하는 글이다. “여기”(here)의 종교, “저기”(there)의 종교, “어디에나”(anywhere)의 종교라는 세 유형인데, 고대 후기 이 지역의 특징은 어디에나의 종교가 확산되면서 두드러진 유형이 되었다는 점이다.
 
1. 여기의 종교: 가정 종교
여기의 종교는 가정 종교(domestic religion)로, 가정과 매장지에 주로 근거를 둔다. 가족의 연속성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큰 관심사이다. 연속성에 대한 위협으로는, 첫째, 전쟁, 질병, 재난, 귀신의 공격으로 인한 가족의 소멸이 있다. 축귀의(apotropaic) 역할을 하는 집안의 작은 신격들이 그러한 위협으로부터 벗어나려는 기능을 보여준다. 둘째로는, 가정이나 가족 매장지로부터의 강제 이주라는 위협이 있다. 조상과의 유대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자신의 유해를 세겜으로 옮겨달라는 요셉의 유언이 예이다. 저기의 종교에서 사자는 오염으로 인식되는데 반해서, 여기의 종교에서는 성스러운 교섭에 필수불가결한 매개 역할을 한다. 셋째로는, 망각의 위협에 대처한다. 그래서 평생 의례나 입문의례에서 공동체에 대한 기억이 강조된다.
여기의 종교는 밥상 공동체의 정서를 가진 공동 식사를 중심 의례로 한다. 식사 때 망자 기념하기, 망자와 음식 나누기, 장지에서 망자와 음식 함께 먹기 등의 의례를 통해 관계를 유지한다. 망자와의 적절한 관계는 음복(blessing)으로 표현된다.
 
2. 저기의 종교: 국가 종교
가정인 여기 너머 저기에, 공공 시민 종교나 국가 종교인 저기의 종교가 있다. 이 종교는 사원 건립이 기반이 되며 담장과 정문이라는 건축적 표현으로 구획된다. 저기의 종교는 6 요소가 함께 주어질 때 갖추어진다: 도시화, 성스러운 왕권, 사원, 위계적인 사제 제도, 희생, 문자. 저기의 종교는 권력의 관계에 관련되고, 이 관계들은 성/속, 깨끗함/더러움, 허용/금지 등의 언어로 표현된다. 그러한 권력 운용의 전략에는 특화된 지식이 요구된다.
여기의 종교가 대칭적인 상호 관계를 갖는데 비해, 저기의 종교에는 신들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 사이의 “거리”가 존재한다.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에도”라는 세계관. 이 거리는 왕과 사원에 의해 매개된다. 위의 것은 아래의 사원과 제의의 이데올로기적인 모델도 작용한다. 저기의 종교의 우주창생론은 중심과 주변의 유지하며 권력의 자리를 고정한다.
저기 종교의 중심 의례는 희생이다. 고기는 불평등하게 분배되고, 의례는 복잡한 위계로 명문화된다. 신을 대행하는 혹은 신의 현현으로서의 성직자를 동반하기도 한다.
 
3. 어디서나의 종교
스미스는 지금껏 현존하는 어디서나의 종교의 예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과, 사마리아인의 종교(Samaritanism), 만데아니즘(Mandaeanism: 영지주의의 일파, “세례 요한의 기독교”라는 별명을 갖고 있음.), 파르시(Parsis: 인도 지역에 남아있는 조로아스터교 신자들의 집단.)를 들고 있다.

(1)새 지형: 페르시아나 로마와 같은 제국이 도래하면서 거주지가 급변하고, 사람들은 정처 없는 시민(a citizen of no-place)이 되어갔다. 자리에서 벗어남을 극복하기 위하여 여기의 종교들도 변화해야 했다. 이스라엘 민족의 이동을 천상으로부터의 하강이라는 수직적인 신화로 재해석한 필로의 작업이나, 인간을 천상의 고향으로부터 유배되어 육체에 갇힌 흩어져 있는 존재로 묘사하는 영지주의적 해석이 이러한 변화의 예들이다.
 
(2)새 우주론: 고대 후기에는 우주에 대한 새로운 그림이 제시된다. 지구는 행성에 둘러싸인 공간으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광대한 우주에서 지구는 하나의 작은 별이고, 그 위의 인간은 보잘 것 없는 존재였다. 지구를 초월함이 어디서나 종교의 목표가 된다. 주의할 것은, 천체의 주기성을 기록한 이전의 관측을 통한 설명 체계(메소포타미아의 오멘 문헌들에 집성되어 있다.)와의 차이. 별이나 행성에 올라가는 경험을 한다든가, 천상의 지식과 친척 관계를 갖거나 숨겨진 신의 지식에 다다른다는 주장은 새로운 양상이다.
 
(3)새 정치체: 제정으로 인해 거기의 종교의 중심이 되었던 왕이 물러났다. 이전의 왕의 자리는 황제의 대리인들이 차지하게 되었고, 이러한 정치 상황은 종교를 변화시킨다. 그리하여 외지의 왕을 거부하고 옛날 왕이라는 노스탤지어로 돌아가려는 메시아 사상에 기반한 천년운동(기원전후의 유대교와 같은), 왕이 진정한 왕이 아니라면 천상의 왕(하느님) 역시 가짜 조물주일거라는 영지주의적인 해석이 나타난다. 멀리 떨어져 있는 황제는, 편재하는 권력을 지닌 주신이 이차적인 신격들을 거느리는 새로운 유일신론이 형성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세상의 왕을 초월하는, 혹은 그에 반대하는 진정한 천상의 왕에게 가는 천상 여행이 회자되기도 하였다.


결사(associations): 어디에나의 종교에서 나타나는 결사는 여기의 종교의 가족의 대안 집단의 성격이 강하다. 도시적 환경에서, 사회적 관계에 의해 형성되며, 신격을 중심으로 모여든다. 결사는 제한적인 멤버쉽을 가지며 회원 간의 비밀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다. 회원들끼리는 평등화 관계가 형성되어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부른다.

주술(magic): 고대 후기의 주술은 여기의 종교와 저기의 종교의 요소들을 재조합한 성격을 갖는다. 여기의 종교처럼 소규모의 의례 공동체이며 망자나 작은 신격과 관계한다. 저기의 종교처럼 신착과 희생이 치루어지고, 종교전문가가 존재한다. 그러나 주술에는 포함과 배제를 결정하는 입문식을 통해 성원들이 결정되며, 초월적 존재와 직접적인 경험에 가치를 두는, “어디에나”의 종교의 특성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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