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ligion, Religions, Religious
거시적인 안목으로 인류의 종교사를 조망하면 우리는 비교적 선명하게 ‘종교의 역사적 변천’을 기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종교라고 일컬을 수 있는 것이 따로 있지 않은 채 ‘종교적’이었던 시대, 종교라는 것이 구분될 수 있는 문화로 등장하면서 각기 개개 종교들이 자신의 절대성을 당해 문화권 안에서 규범적인 것으로 발휘하던 ‘종교’의 시대, 문화권의 단절이 소통 가능하게 열려지면서 하나의 문화권 안에 여러 종교들이 공존할 수밖에 없게 된 ‘종교들’의 시대, 그리고 삶의 모든 양태들이 스스로 의미있고 가치있는 절대적인 것으로 여겨지면서 특별히 종교라는 전승된 문화만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 자체를 ‘종교적’이라고 읽어야 비로소 삶의 모습이 묘사될 수 있는 ‘종교적인 것’의 시대로 진전되어 온 ‘흐름’이 그것입니다.
-정진홍, <<엘리아데-종교와 신화>>(살림, 2003), 5.
1. 종교가 없다
유럽인들이 신세계 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에겐 ‘종교’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카나리아 군도 “사람들은 수치심도 없이, 종교나 하느님에 대한 지식도 없이 벌거벗은 채 지낸다.” 북 안데스 원주민들은 “어떤 종교도 지키고 있지 않으며, 예배드릴 집도 전혀 없다.” 이 서술들은 16세기에 이르러 서구 개념 종교가 확대되어 적용되기 시작한 모습들인데, 여기서 범주의 특성을 볼 수 있다. i) 종교는 토착의 범주가 아니며 외부에서 부과된 범주이다. ii) 종교는 인류의 보편적인 현상이라고 생각되었다. iii) 자기들에게 친숙한 것들로부터 종교 개념을 구성한다. iv) 신학적 범주가 아니라 인간학적 범주이다. 인간의 생각과 행위를 묘사한다.
2. 종교라는 말의 역사
① 처음에 종교는 의례적 용법으로만 사용되었다. 로마와 초기 기독교 시대 동안 'religio'는 제의 규정들의 엄격한 준수를 의미하였다. 코르테스나 아코스타가 아메리카 사람들에 적용한 ‘종교’는 그런 개념이었다. 종교는 수도회, 수사와 관련된 의미이거나 의례 행위에 관련되어 사용되었다. 종교가 의례 실천과 관련된 것이었기 때문에, 신화나 신념들은 고대물(antiquities)들로 기록된 반면에, 기독교 의례와 비슷해 보이는 것들이 비교 작업에서 눈에 띄어 우상숭배(idolatry)나 카니발리즘(cannibalism)과 같은 타자성의 범주들을 구성하였다.
② 의례적 용법, 즉 가톨릭적 의미였던 종교가 정신의 상태인 믿음을 일컫는 쪽으로 전환된 것은 종교 개혁 이후이다. “하느님을 아는 것과 그 분을 합당히 섬기는(service) 것이 종교의 두 중요한 목표이다.”라는 브리태니커 초판(1771)의 서술이 이 전환을 잘 보여준다. 종교가 신앙(faith)과 동의어로 사용되면서, 종교의 진실성을 가리는 문제가 대두된다. 비기독교 전통들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고, 개신교회들의 내부의 분열이 격화되면서 상대방보다 권위를 갖추고자 하였다. 종교들이 서술되었고, 그로부터 단수의 유(類)적 종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대두한다: “진실한 종교는 하느님 자신이 가르치는 것 하나일수밖에 없다. 다른 종교들은 그 분에서 벗어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어둠속에서 헤매다 미궁 속에서 실패한다.”
③ 종교들에 대한 연구로부터, (여러 의미들 중에서도) “다른 신앙들 사이에 공통된 것”이라는 의미의 자연 종교(natural religion) 개념이 등장하였다. 자연 종교에서는-흔히 보편성이나 타고남(innateness)으로 표현되는-유사성이 강조되었고 차이점은 역사적인 것으로 치부되었다. 18세기의 대중적인 책에서 틴달은 누구에게나 하느님의 존재를 알고 지각하여 이성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그것이 자연 종교라고 주장한다. 다만 각 나라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서 그 능력이 종교로 발전하거나 미신이 된다.
④ 아무튼 자연 종교에 대한 논의는 종교를 초자연의 영역에서 내려 역사의 차원에서 인간학적인 범주로 논하는 단초를 제공하는데, 이 변화를 명확히 보인 이가 데이비드 흄이다. 그는 종교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라는 이론을 거부하고, 종교의 원칙들이 이차적이라는데서 논의를 시작한다. 그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느끼는 희망과 공포에서부터 종교의 기원을 찾는다. 미지의 원인이 상상력을 통해 인격화 될 때, 희망과 공포라는 일차적인 인간 경험이 이차적인 종교적 해석이 되는 것이다. ‘종교적’인 것(미지의 것)은 다른 인간 현상의 한 측면(기지의 것)이 된다. 계몽주의 시대의 연구들의 목표는 종교를 인간의 힘과 능력의 영역 안에 위치시켜 이해가능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3. 종교들의 분류, 세계 종교
자료들의 증가에 의해 종교들을 분류하는 문제가 야기되었다. 최초의 종교사 책에서는 기독교 교파들만 다루어졌다. 브레러우드에 이르러서는 4분법이 제시된다(1614):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 “우상 숭배.” 이후 “우상 숭배”가 갈라져서 불교(1821), 힌두교(1829), 도교(1839), 유교(1862) 등 신조어들이 등장한다.
① 흔한 종교 분류 방식으로, ‘우리의 종교’와 ‘그들의 종교’를 가르는 이분법이 있다. 그들의 종교는 이교(paganism), 이방 종교(heathenism), 우상숭배(idolatry) 등으로 불린다. 우리/그들의 구분은 참된 종교/거짓 종교, 영적/물적, 일신교/다신교, 종교/미신, 종교/주술 등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보면 4분법 안에서도 기독교가 이상적인 형태의 종교이며, 유대교와 이슬람은 아브라함 종교로 묶여 기독교에 더 가깝고 우상숭배보다는 덜 나쁜 게 된다.
② 더 영향력 있는 전술은 자연/초자연의 인식론적 이분법을 신앙의 대상으로(즉 ‘자연 숭배’로) 전환하는 것이다. 자연물에 대한 숭배는 저급한 것으로 미개한 사람들의 종교이다. 인류학적 서술에서 자연 종교는 물신숭배, 토테미즘, 샤머니즘, 신인동형론, 전애니미즘, 애니미즘, 가족신, 수호령, 조상 숭배, 구역신 등으로 세분화된다.
‘영적인’ 대상을 추구하는 고등 종교는 나름대로 분류되는데, 인종 종교와 창시 종교의 구분이 있다. 이 구도에 따르면 아브라함 종교 vs 우상숭배의 도식에 변화가 생긴다. 유대교는 인종에 매인 육적인(freshly) 종교로 강등되며, 불교는 인종을 넘어 보편을 추구하는 영적 종교로 진급한다.
③ 가장 지속성을 지니는 전략은 “세계 종교” 혹은 “보편 종교”이다. 틸레가 쓴 브리태니커 9판(1884)의 "Religions" 항목에서 체계적으로 도입된다. 틸레는 우선 자연 종교와 윤리적 종교를 나눈다. 자연 종교에는 ⑴애니미즘 영향 아래 있는 다정령적(polydaemonistic) 주술 종교 ⑵정화되거나 조직화된 주술 종교, 반(半)신인동형적(therianthropic) 다신교 ⑶신인동형적 다신교가 있으며, 윤리적 종교에는 ⑷민족적 율법 종교 공동체(도교, 유교, 브라만교, 자이나교, 조로아스터교, 유대교)와 ⑸보편주의적 종교 공동체(이슬람, 불교, 기독교)가 있다. 가장 고등한 종교들도 동등한 것은 아니며, 그 중에서도, 비록 완전하지는 않지만, 기독교가 이상적인 종교 형태에 가깝다고 결론내린다.
④ 기독교와 이슬람이 세계 종교면, 유대교를 빼면 섭섭하고, 불교가 세계 종교면 힌두교도 빼기 미안해진다. 또 중국 종교와 일본 종교 문제도 그렇고. 그리하여 중요한 지리정치적 실체들은 세계 종교로 대접받게 된다. 그러나 기타등등의 종교는 여전히 보이지 않은 채 남아있다.
4. 종교 정의하기
① 많이 사용되는 신학적인 종교 정의로는 틸리히의 것이 있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도덕의 영역에서는 도덕적 요구에 대한 무조건적인 진지함으로, 지식의 영역에서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열정적인 갈망으로, 미적 기능에서는 궁극적 의미를 표현하려는 무한한 바람으로 나타나는 궁극적 관심”이다. 그러나 이것이 보기처럼 편견이 없거나 열린 마음의 정의는 아니다. 틸리히는 사실상 종교적인 것을 인간 실존의 한 측면으로 제시한다. 하지만 거기서 기독교 신학적인 기준을 빼버린다면 이 종교가 다른 이데올로기 범주와 구별될 길이 없다. 니니안 스마트의 ‘세계관’도 동일한 문제를 가진다.
② 인류학적 정의 중에서는 스피로의 것이 유명하다. 종교는 “문화적으로 가정된 초인간적인 존재와 갖는 문화적으로 유형화된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제도”이다. 이에 동의하려면 문화적으로 창조되었다는 이론을 받아들여야 하며 종교를 문화 활동의 하위 유형으로 놓아야 한다. 이후 학자들 중에는 이 정의에서 이러한 종속성을 제거하거나 ‘초인간적인’을 ‘초자연적인’으로 바꾸려는 이들이 있다.
③ 종교에 관한 50가지 정의들. 이것은 종교의 정의의 불가능성이 아니라 종교가 정의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종교는 토착의 범주가 아니라 학자들의 지적 의도를 위해 창조된 용어이다. 이 이차적이고 유적 개념은 학과의 지평으로서 중요하다. 언어학과의 ‘언어’나 인류학과의 ‘문화’처럼.
* 한국의 종교 없음에 관련된 진술
하멜
설교나 교리문답 같은 것은 알지 못하며, 신앙에 대해 서로 가르쳐주거나 하는 일도 없습니다. 어떤 신앙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종교에 대해서 논쟁을 하는 법이 절대 없습니다. 이 나라 어디를 가 보아도 우상을 섬기는 방식은 다 이와 동일합니다.
Horace N. Allen, Things Korean (New York: Fleming H. Revell Company, 1908), p.168.
The people really have no religion of their own. Confucianism is merely a system of morals without God, and Buddhism has fallen into disrepute. At the same time the natives are by nature devoutly inclined and Christianity naturally appeals to them.
James S. Gale, Korea in Transition (New York: Young People's Missionary Movement of the United States and Canada, 1909), p.67.
Korea seems peculiarly devoid of religion. There are no great temples in the capital that tower above the common dwelling of men. There are no priests evident, no public prayings, no devotees, no religious fakirs, no sacred animals walking about, no bell-books or candles sold, no pictures with incense sticks before them, no prostrations, in fact no ordinary signs of religion, and yet if religion be the reaching out of the spiritual in man to other spirits over and above him, the Korean too is religious. He has his sacred books, he kneels in prayer, he talks of God, of the soul, of the heavenly country.
** ‘종교적인’ 것이라는 종교 정의 전략
세계의 범위와 성격을 표현하고 규정해주는 이미지, 행위, 상징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안에서 살아가며 의미와 그 성취의 조건을 찾아내는 우주적인 틀(framework)을 제공해주는 것들을, 우리는 종교적인(religious) 것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갖고 살아가도록 해주는 행위, 절차, 상징들을 종교적인 것이라고 할 것이다.
(Sam Gill, Native American Religions, p.11.)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