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길(Sam Gill)의 <<Native American Religions>>는 오래되었지만(1982년) 아직도 삼빡한 개론서이다. 이렇게 참신한 관점에 입각해서 종교 현상을 서술한 책은 지금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책의 서론에서 인상 깊은 구절들을 좀 옮겨본다.
의미심장하게도, 질은 콜럼부스가 서인도에 도착했을 때의 상황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시아로 간다고 믿었던 콜럼부스의 삽질로 만난 사람들. 유럽인들의 세계관에는 새 대륙과 그 사람들을 설명할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지의 상태에서 인디언이라는 이름만 붙여 놓았을 뿐이다.(인디언이라는 말은 이 책에서 북미원주민으로 대체된다) 그들에 대한 이해는 나아진 것이 별로 없기에, 질은 지금 우리의 상황은 콜럼부스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우리가 “인디언”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이다[즉, 우리의 세계관에 의해 보도록 규정된 부분만을 보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찰들 역시 전적으로 우리의 전제와 기대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콜럼부스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믿음들과 맞지 않는 이유에서 그 사람들과 그들 방식에 대한 대부분의 명확한 사실들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디언”에 대한 연구는 사실상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향한 유럽의 시선에 대한 연구이다. 이 연구는 북미 원주민보다는 유럽인에 대한 것들을 밝혀주는 것이기에, 유럽과 유럽-아메리카의 역사에 더 관련된다. (5)
길은 매우 명확하게 북미원주민에 대한 연구는 타자에 대한 인식의 역사이며, 타자 이해는 곧 유럽인들 자신의 정체성 확립의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리/그들”의 관계 설정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주지하는 것이 북미원주민 연구에서 선행되어야 함을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있다.
“종교”라는 말은 유럽인에 의해 주어진 말이며, 북미원주민들 언어에는 해당하는 말조차 없다. 콜럼부스나 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종교”라는 말을 통해 이야기한 것은, 아메리카에 “기독교 비슷한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고였다. 종교가 외부적 개념이라는 점에 주의하며, 질은 종교 정의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다. 종교(religion)라는 말 대신에 종교적인(religious)라는 형용사 표현을 사용한 것을 보면 그가 개념의 확장성에 얼마나 유의했는지를 볼 수 있다.
세계의 범위와 성격을 표현하는 규정해주는 이미지, 행위, 상징들, 특히 그 중에서도 사람들이 살아가며 의미와 그것이 성취되는 조건을 찾는 우주적인 틀(framework)을 제공해주는 것들을, 우리는 종교적인(religious) 것이라고 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삶의 의미와 목적을 갖고 살아가도록 해주는 행위, 절차, 상징들을 종교적인 것이라고 할 것이다. (11)
서론을 마무리 지으며 하는 이야기도 멋있다. 우리가 책을 통해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북미 원주민 종교라는 전체 지형을 다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지도를 작성하는 작업이라는 것. 지도는 지도일 뿐! (Map is not terri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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