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53장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구약 구절 중 하나일 것이다. 이 부분에서 제2이사야가 “고난받는 종”에 대해 예언한다. 이 예언은 기원전후의 메시아 운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후에 사람들이 예수라는 인물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을 결정하게 된다. 기독교인들은 이 부분을 구약에 있는(즉, 예수 탄생 이전에 이미 하느님에 의해 예고된) 예수에 대한 예언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53장의 앞부분은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된다.
그는 주 앞에서, 마치 연한 순과 같이, 마른 땅에서 나온 싹과 같이 자라서, 그에게는 고운 모양도 없고, 훌륭한 풍채도 없으니,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이 없다. 그는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버림을 받고, 고통을 많이 겪었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중 “유다에 관한 세 가지 다른 이야기”를 읽다보니 재미있는 대목이 나온다. 줄거리에 중요한 부분은 아니고 지나가는 이야기이긴 한데, 이렇게 말한다.
그 유명한 구절(위의 내용)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죽음의 시간에 그가 받게 될 십자가형에 대한 예언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 있어(예를 들어, 한스 라센 마르텐센 같은) 이 구절은 그리스도가 잘 생겼다는 일반적인 통념에 대한 반박에 해당된다.(보르헤스, 황병하 옮김, <<픽션들>>(민음사, 1994), 253쪽.)
신학자들에게는 예수가 잘 생겼느냐도 심각한 논의의 주제가 될 법하다. 꽤 의미있는 이야기도 도출될 수 있을 것 같고.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런 식의 논의가 진짜 있었느냐 하는 것인데, 소설의 한 대목인지라 알 수 없다. 보르헤스는 현학적인 것 갖고 하도 능청스럽게 구라를 잘 치는 양반이라 직접 확인해보지 않는 한 알 수 없다. 그런데 한스 라센 마르텐센(Hans Lassen Martensen)과 같은 처음 듣는 19세기 덴마크 신학자의 저서를 어디를 뒤져 확인한단 말인가? (키에르케고르 전공자 정도나 되어야 이 사람 이름 들어보았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나라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 그것도 핵심 주장이 아니라 책 구석 어디엔가 있을 법한 이야기인 것을... 물론 그의 덴마크 저서가 영역되었는지도 알 수 없고. 책벌레 보르헤스 앞에서 두 손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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