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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배움/메모

엘리아데에 대한 짧은 메모

by 방가房家 2023. 4. 19.
엘리아데는 이름이 알려진 유일한 종교학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아직도 엘리아데가 어렵다. 그에게서 무언가를 더 캐내어야 할텐데, 아직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만이 있을 뿐이다. 솔직히 얘기하면, 엘리아데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정진홍 선생님의 탓(?)이다. 정선생님의 가르침만 없었어도, 그저 엘리아데를 꿈 큰 학자로 쉽게 생각하고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그의 언어에 그리 촉각을 세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엘리아데의 책은 그저 읽기에는 참 좋지만, 학문적 언어로 정리해서 이해하는 것은 수월하지 않기 때문이다.
분명히 그의 저작들은 체계적이지 않습니다. 그의 이론은 정합성을 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기준에서 보면 엘리아데가 일컬어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알 수 없는 현상’이고, 그런 면에서, 엘리아데 자체가 문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보더라도 그를 읽는 작업은 ‘끝이 없는 해석’을 강요합니다.
(정진홍, <<엘리아데>>(살림, 2003), p.86.)
내 짧은 경험에 비추어볼 때, 정선생님만큼 진지하게 엘리아데를 읽는 사람을 미국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내 주변의 사람들은 물론, 내가 최근에 읽어본 책들에서도 그러하다는 말이다. 일반적인 미국애들은 엘리아데 책들을 그냥 정신 건강에 좋은 책 정도로 읽는 것 같고, 똑똑한 미국 학자들 글 읽어보면 엘리아데 저작이 자료 사용에 있어서 엄밀하지 못하고 용어 사용이 일관되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데에만 힘을 쏟는 것 같다. 엘리아데가 학자로서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시야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엘리아데에 대한 정선생님의 생각을 간결하게 써 놓은 <<엘리아데 -종교와 신화>>라는 책은 뜻밖의 문장으로 끝난다. 한국 종교학계에 대한 쓴소리를 한마디 던져 놓으신다. 엘리아데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학문적이지 않은 것으로 취급하는 풍토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아는 요즘 풍토만 본다면 좀 지나친 표현이라고 생각되지만, 선생님이 학문하시던 시절에는 그런 수모를 많이 당하셨던 것으로 짐작된다. 정선생님 글을 여러 권 읽어보았지만, 이렇게 말에 뼈를 심어 놓으신 것은 별로 본 적이 없다. 선생님의 엄한 얼굴이 떠오르는데 이상하게 슬몃 미소가 지어졌다.
그를 일컫는 것만으로도 이른바 학자군(學者群)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조건을 다 갖춘 것으로 여겨지는 한국의 ‘종교학’ 풍토에서는 이미 그가 ‘학자’이지도 않고, 비록 그렇다 할지라도 ‘낡은 학자’가 된 지 오래입니다만. (정진홍, <<엘리아데>>(살림, 2003),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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