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ss, John, "Our Attitude toward Confucianism," <<The Chinese Recorder>> 18-1 (Jan., 1887): 1-11.
Ross_Attitude_Confucianism_ ChineseRecorder_18_1887.pdf
존 로스, 유교에 대한 우리의 자세
(글의 앞부분, 1-4쪽의 번역)
(1886년 5월, 북경에서 북중국 성서문서협회에서 낭독한 글)
“모든 것이 나에게 허용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고린도전서> 6:12)
“나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다 되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가운데서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고린도전서> 9:22)
우리는 위의 말씀들로부터 자기 일을 가장 훌륭하고 성공적으로 수행했던 선교사들이 따랐던 원칙들을 얻게 된다. 그[바울]의 삶, 연설, 서한을 검토해보면 그 진정한 의미가 드러날 것이다. <<구약 성서>>에 친숙하고 존중하는 유대인들에게 설교할 때, 바울의 주장은 구약에 기초한 것이었고 그는 바로 그것으로부터 “예수는 그리스도임”을 증명해 보였다. [반면에] 그리스 지식인들로 이루어진 아레오바고 법정(Mars Hill)의 청중들은 바울의 연설을 통해 <<구약 성서>>와 같은 책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러한 행동 방식을 통해 우리는 바울이 자신의 상황에 적응했음을 이해해야 한다. 연어나 대구를 잡는 어부처럼, 바울은 사람을 얻기 위한 자신의 노력에 상식을 적용하였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간교한 속임수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이러한 적응 과정 이전에는 상황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충분히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청자의 정신적이고 도덕적 관점에 대한 면밀한 탐구가 필수적이다. 동일한 목적과 가르쳐야 할 동일한 일반적 진리를 가졌음에도, 바울은 로마 병정에게 이야기할 때와 아레오바고 사람들에게 연설할 때 완전히 다른 스타일을 사용하였다. 이것은 그가 아그리파 앞에서 한 연설이 펠릭스에게 한 연설과 완전히 달랐던 것과 마찬가지이다.
도덕 사상과 지적 훈련 양태가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교육과 관습을 지닌 사람들에게 선교했던 바울이 다양한 청자들에 맞추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고 한다면, 교육, 관습, 정신적 훈련, 도덕 사상의 양태가 우리와 너무나도 다른 중국에서 선교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적응 과정이 얼마나 더 필요한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바울이 해야 했던 것은 관찰력 있는 눈으로 살피고 훈련된 귀로 듣는 것이었다. 중국에 있는 선교사들은 주변에서 말하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쉽지 않은 언어를 정복해야 한다. 그리고 한문은 일상 회화에서 사용되는 것과 너무 다르기 때문에, 피상적으로나마 중국 사상에 익숙해지려면 다시 고통스러운 오랜 공부가 요구된다. 아마 성질 급한 사람들은 이것을 쓸모없는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더 쉬운 길이 “허용된다”고 해도, 그것은 “유익한”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며, 그것을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다 된 모든 것”이 되는 식의 노력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열심히 공부해서 도덕적 주제들에 관해 중국인들의 생각과 나란히 해보지 않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울의 생각과 같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또한 나의 개인적인 경험이 가치가 있다면, 내가 배운 것은 사서(四書)에 담긴 유교를 익히는 것만큼 중국인을 아는 데 만족스럽고, 철저하고, 권위 있고, 직접적이고 빠른 방법은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교사라는 책임 있는 자리를 맡은 사람―공인된 기독교의 대표자―으로서 개인적인 지식과 확신을 갖고 말을 할 수 있게 해주는 한자를 미리 익히는 노력도 없이 그들의 종교 체계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유익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어떠한 체계에 대해 친근함을 표하던 적대감을 취하던 그는 “모든 사람들에게 근거를” 댈 수 있어야 한다. “부끄러울 것이 없는” 잘 준비된 일꾼은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장애물들에 대해 알게 될 것이다. 중국에는 바울이 만났던 것보다 더 심각하고 많은 장애가 있다. 우리는 외국인들이다. 우리의 관습과 예절은 우리 옷과 마찬가지로 상이하다. 우리 언어는 낯설다. 우리의 목적은 오해를 받는다. 우리는 중국의 완결성의 의도를 부여받았다. 우리는 중국인만큼 말을 잘해서 서양 국가들의 파당이 되어 속이는 외국 정부의 파견자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중국에서 많은 존경을 받는 공자의 권위를 뒤집으려는 사람들로 오해받는다.
이제 “비둘기와 같이 순진”할뿐만 아니라 “뱀과 같이 슬기로운” 선교사들, 사람들을 얻고자 하는 선교사들은 틀림없이 자신에 대한 중국인들의 편견을 강화시키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니, 그는 진리가 허락하는 한 그러한 편견을 무마하는 데까지 나가야 할 것이다. 자신들이 서양 국가에서 교육받은 것과 기독교인이자 문명화된 국가의 일원으로서 갖게 된 습관과 일치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시비를 걸거나 경멸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화를 돋구기 보다는, 선교사는 사람들의 관례에서 실질적으로 죄가 아닌 것에 대해서는 최대한 관용적으로 허용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당신의 친구를 쓰러뜨린다고 그를 설복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가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당신은 부드럽게 그에게 어떤 가치 있는 것이 있는지를 최대한 말해야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인의 신념을 싸잡아 정죄하거나 무분별하게 그의 이념에 반대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은 자존심이 강한 중국인의 신뢰를 받는 방법이 아니다. 중국인들이 특별히 존중하는 사물이나 인물이 있다면, 그 존중이 나오는 근원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옥에 그들이 보지 못하는 티가 보인다고 해도, 기고만장해서 그 흠집을 지적함으로써 당신의 우월함을 증명하려 하지 말라. 차라리 그들이 존중하는 특성에 대해 말하고 어느 정도의 훌륭함에 대해 자부심을 갖도록 하라. 몇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모든 종류의 사람들에게 모든 것이 다 되기” 위해서는 지적으로 거인이 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다만 이타성과 공감,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친절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유교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모든 면에서 많이 있다.” 당신이 전에 보지 못했고 앞으로 만나지 않을 혼합된 청중들 앞에서 연설할 때, 당신은 자유로이 요즘 불교의 잘못을 드러내거나 도교의 우스꽝스러움을 비웃어도 된다. 당신은 합리적인 사람들이 색칠한 소조 앞에 절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당신의 혐오를 자유로이 골라서 표현해도 된다. 청중들은 당신의 말에 웃음을 터뜨리고 당신의 감수성이 ‘올바르다’고 칭찬할 것이다. 그러나 당신이 공자에 반하는 이야기를 한 마디라도 한다면, 심지어는 유교 체계가 불완전하여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는 무제약적인 암시를 주기라도 한다면, 당신은 즉시 웅얼거림이 이는 것을 느낄 것이며 아마 격앙된 말도 들을 것이다. 당신이 우상숭배하는 종교에 반대해서 하는 말들에는 모두 동감하며 찬성했을 청중들이, 유교에 직접 반대되는 의혹 한 줄기에도 개인적인 모욕을 당한 것처럼 분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단 청중들의 마음에 적대적인 생각이 일어나면, 그들은 즉시 당신에게서 눈을 감아버릴 것이다. “능숙한 당신의 요술도 따르지 않는 것이다.”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이 반짝이는 얼음 위를 달리다가 갑자기 큰 글씨로 “위험”이라고 쓴 표지판이 그 앞에 선 것을 갑자기 본다면, 그는 급히 발뒤축을 올려 그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할 그 장소를 피할 것이다. 선교사에게서 청중의 마음을 앗아가는 것이야말로 그러한 표지판에 해당할 것이다. 유교를 무시하는 그러한 성격의 사람의 동기는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만, 혼합된 청중을 향해 공개적으로 유교에 대한 적대적인 비판을 표현하는 것은 최소한으로 말해도 현명치 못한 처사이다. 뒤따르는 이득은 불확실하지만, 뒤따라 일어날 나쁜 결과는 너무나 분명하다. 유교에 대한 무제약적인 비난은 틀림없이 이미 중국인들의 마음에 존재하는 설교자에 적대적인 편견들을 크게 증가시킬 것이다. 중국인들은 사실 공자를 자랑스러워 할 이유들을 많이 갖고 있다. 공자는 교육 제도를 창시하였고, 그가 문명의 요소들을 도입한 것은 아니라 해도 그것들을 정형화하여 영원하게 하였다. 다양한 사람들과 혈족으로 형성된 중국인들에게, 공자는 다른 누구보다도 동질적인 민족으로서 결속에 기여한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유교에 대한 적대감이나 경멸적인 언급은 중국에 온 선교사들의 목표를 진전시키기보다는 방해가 될 것이라는 부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이제 우리 주제에 더 밀착해서, 서로간의 경계를 세세하게 긋는 일보다는 기독교와 유교의 주된 의도를 살펴보도록 하자.
보통 유교는 종교라고 지칭된다. 그러나 유교인들 자신이 서구적 의미에서의 이 용어를 자기 체계에 대한 정확한 분류로 기꺼이 받아들일지의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 이 용어는 유교가 불교나 도교와 함께 중국의 삼교(三敎[Chiao])로 불린다는 사실 때문에 채용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용어[敎]는 ‘종교’를 의미한다기보다는 ‘가르침’, ‘교육의 체계’를 의미한다. 내가 보기엔 공자가 그의 전하는 교의들을 ‘종교’로 유형화했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의무론>>의 저자가 자신의 체계를 ‘키케로 종교’라고 알리고자 했다든지 플라톤은 스승을 ‘소크라테스 종교’로 알리고자 했다는 것이 더 그럴 듯하다고 생각될 정도이다. 사실 제자들이 공자에게 영적인 질문은 했던 두 경우에 공자는 대답을 회피하였다. 맞다, 유교에는 종교 의례에 대한 문장들이 몇 문장 있긴 하다. 그러나 공자의 강한 보수주의 때문에 고대의 종교 관습에 대한 수정이 없었다 하더라도, 그 내용은 다만 유교 체계에 잉여물일 뿐이고 그것을 제거한다 해도 [전체] 체계는 손상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교를 종교로서가 아니라 도덕 체계로서 분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