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 니콜라우스가 산타클로스로 재탄생한 것은 19세기 중반 이후였다. 산타는 대중적 상상력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는데, 여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작품으로는 어린이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많이 팔렸던 영시英詩 “크리스마스 전야”(원제는 “A Visit from St. Nicholas“)를 꼽을 수 있다.
2. 산타클로스의 탄생 과정에 대해서는 이 글(산타클로스가 지금의 모습으로 되기 전)의 도상을 참고할 것.
3. 산타클로스는 1890년대에 더 큰 생명력을 얻게 된다. 그 이전까지 상상의 존재였다면, 이 시기 산타는 실제 모습으로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메이시스(Macy’s)를 비롯한 뉴욕의 유명한 백화점에서 산타클로스 복장을 하고서 판촉 활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 이 시기였기 때문이다.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상상의 존재가 행연(performance)를 통해 가시적인 존재가 됨으로써, 신화가 의례를 통해 재현됨으로써 산타는 더욱 의미 있는 존재가 되었다. 백화점 알바 산타는 큰 호응을 얻었고, 산타로 분장해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지는 행위는 이 시기에 보편화되었다.(사실 산타 분장 관습이 먼저 있었는지 백화점 알바가 먼저였는지에 대해서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둘의 상호작용으로 유행이 급격하게 퍼졌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의 1901년 선교 기록에서 선교사 블레어가 산타로 분장하여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었다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산타가 가시적 존재로 등장한 것은 그가 실제로 존재하느냐에 대한 논란을 격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버지니아라는 소녀가 산타가 진짜 있는지 신문사에 질문을 보낸 것이 1897년의 일이다. (다음을 참조할 것:그래 버지니아야 산타클로스는 있단다)
당시 산타의 모습은 1898년에 제작된 다음의 영화에 보존되어 있다.
4. 1920년대 중반에 메이시스 백화점은 산타클로스가 등장하는 추수감사절 퍼레이드를 시작한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작을 알리는 대표적인 풍습으로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는 이 시기의 주인공이 산타임을 널리 알리는 의례로 자리잡았다. 이 시기는 산타클로스가 코카콜라 광고에 등장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차림새를 완성한 때이기도 하다. (선드블롬의 코카콜라 산타 이미지) 그리고 “산타 할아버지 우리 마을에 오시네Santa Clause Is Coming to Town”라는 캐롤이 작곡되어 유행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5. 내가 <34번가의 기적>이라는 영화를 인상적으로 본 이유는 위의 4,5번의 산타의 형성 과정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백화점에서 산타를 알바로 고용하면서 시작된다.(1947년도의 원작에는 정확하게 메이시스 백화점이 배경이 되며, 1994년의 리메이크에서는 메이시스가 제작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콜스Cole's라는 가상의 이름이 사용되었다.) 그 산타가 어린이의 호응을 얻으며 백화점의 매출을 대폭 올린다는 내용은 산타의 존재가치를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다. 어린이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은 바로 이 상업적인 맥락을 떠나서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산타가 자본주의의 꽃임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영화의 미덕이라고 생각하면서 감상하던 중에, 산타가 놀라운 발언을 한다.
이 장면에서 인상적인 대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이기심과 증오를 억누르는 인간 능력의 상징이다”I'm a symbol. I'm a symbol of the human ability to be able to suppress the selfish and hateful tendencies that rule the major part of our lives.
이 대사는 의미심장한 것 같으면서도 헷갈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자신의 출신 성분을 망각한 산타의 자기 인식이다. 자본주의의 꽃이 이기심을 억제하는 존재라고 자기 고백을 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아마 그것이 진실한 자신의 심정일지도 모른다. 원래의 생산관계가 망각되고 새로운 상징적 의미, 혹은 신학적 정당화가 이루어지는 이 모습은 종교상징의 탄생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마르크스의 용어로 소외라고 부를 수 있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된다.
또 하나 의미심장한 것은 자신을 상징이라고 발언한 대목이다. 사실 이 영화는 산타가 실재하는 것인가의 질문을 던진다. 있느냐,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상징이라는 대답은 절묘하다. 양편의 입장을 모두 만족시키는 대답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할아버지는 자신이 실제 산타라고 믿는 것처럼 보이며, 영화는 그가 실제 산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계속 암시한다. 그러면서도 확실한 주장을 하는 것은 아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이고,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을 여지를 주면서, 그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것이 이 영화의 힘이다. 자신을 상징으로 정의하는 이 대사에도 그러한 영화의 힘이 실려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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