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절에서 지내는 천도재에 관한 논문에서 흥미로운 진술을 볼 수 있었다. 서울에 있는 한 절의 주지께서 하신 말씀.
제사를 점점 절에서 많이 지내는 추세죠. 이제 제사 많은 집 같은 경우에는 하루로 정해가지고 지내버리는 경우도 많아요, 벌써. 1년 제사 지낼 거를 쫙 모아서 하루에 다 잡아가지고 절에서, 아주 합동천도제로 해버리는 거야. 그런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는 날은 작은 아들은 교회 다녀, 셋째아들은 천주교 다녀, 하나는 뭐 절에 다녀, 가지각색이야. 막 요새 그렇다고 다종교시대니까. 그러니까 염불 하다보면 ‘하느님 아버지시여’ 하는 사람도 있고, ‘성부와 성자, 성신…’, 하하! (연구자: 큰절은 합니까?) 그런 사람은 큰절 안하죠.[구미래, “불교 천도재에 투영된 유교의 제사이념”, 편무영 외, <<종교와 조상제사>> (민속원, 2005), 68-69.]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붙인다.
내게 흥미로운 점은 불교의 제사로 유교식 제사를 대체할 수 있다는 마인드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논문에서는 불교의 제사에서 “유교 제사와의 친연성”을 느꼈다고 말하고 있는데, 이를 내 식으로 표현하대면 제사라는 영역에서 불교와 유교 간에 호환성이 구축되었다고 하고 싶다. 유교식으로 안 될 때, 혹은 유교식으로 하는 게 불편할 때, 불교식으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는 것이다. 불교가 되었든 유교가 되었든 어느 식으로든 자신에게 가능한 방식으로 조상을 모실 수 있는 하나의 옵션이 되었을 때, 나는 그 종교의례가 한국 상황에 온전하게 뿌리내린 것이라고 평가하고 싶다.사찰에 의뢰하여 기제사, 명절제사를 지내는 것이 민간에 자연스럽게 수용되는 것은 의뢰자가 불교신자라는 이유만이 아니라, 불교에서는 기독교나 천주교와 달리 전통유교의 제사와 유사하게 죽은 자에 대한 의례를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곧 부모의 기제사를 더 이상 지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자비정사 사례’의 두 딸이 49재를 치르고 난 뒤 사찰에서 제사를 지내기로 했듯이, 비신자인 경우에도 천도재를 참관해본 후에는 유교 제사와의 친연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49재를 통해 망자를 좋은 곳으로 보내주고자 하는 유족들의 마음과 마찬가지로, 사찰에서 지내는 제사 역시 현실에서 망자를 추모하며 후손의 예를 다하고자 하는 민간의 심성을 잘 담고 있어, 불교와 무관한 이들까지 포용할 수 있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가운데서도 불교신자 및 집에서 제사를 지내기 힘든 여건에 처한 이들을 중심으로 사찰에서 지내는 제사가 점차 확산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69)
조선시대 무교巫敎에서는 모계에 대한 조상제사를 무교가 떠맡았음에 대한 연구가 꽤 되어 있다. 유교 제사는 장자로 이어지는 남계를 통해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에, 외할머니나 어머니의 제사를 모시고 싶은 여성들의 바람은 무교 의례를 통해 이루어져다는 것이다. 이 경우 유교식으로 안 되는 제사를 무교식으로 이룰 수 있는, 제사로서의 호환성이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다. 불가피한 선택을 호환성이라고 하는 것은 좀 적당치 않은 면이 있지만, 현대로 올수록 굿을 통해 유교 제사를 대체할 수 있는 호환성이 증가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신교 의례나 천주교 의례는 호환성이 아직 부족할 것이다. 추도식이나 천주교 제사 등은 토착적 의례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지만, 아직까지는 완전히 한국화된 의례라고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장남이 교회에 다니니까 다른 종교를 믿는 동생들도 그 집에 가서 불평 없이 추도식을 지낼 형편은 아닐 것이다. 차라리 동생네서 따로 제사를 지내거나 절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모색하는 것이 지금의 상태일 것이다.
죽음의례 간의 상호 영향의 다른 측면을 본다면, 불교식이 다른 의례들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불교식이 아니더라도 49재를 지내는 것을 들 수 있다. 요즘엔 가톨릭 신자들도 사후 49일째 되는 날 연미사를 올린다고 하는데, 이러한 모습은 한국의 죽음의례 간의 호환성이 갖추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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