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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문화/죽음의례

주재용, <先儒의 天主思想과 祭祀問題>

by 방가房家 2009. 2. 11.

주재용, <<先儒의 天主思想과 祭祀問題>> (경향잡지사, 1957).
가톨릭 교회 입장에서 제사 문제를 정리한 1950년대 글.

제사는 지내는 것은 극단적인 효의 실천으로만 간주되기 쉽지만, 저자의 입장에서는 유고의 오륜(五倫)을 지키는 것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에 연결되기 때문에 결국 제사는 하느님으로 향한 것이라는 결론으로 유도된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제사를 이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단이라 함은 천주에게 드릴 양식을 부적당한 방식으로, 혹은 천주가 아닌 타자에게 바쳐, 피조물을 마치 천주처럼 섬기는 것을 말하는데 제사는 하느님에게 향한 것이기 때문에 이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제사에서 섬기는 것은 하늘이지 부모가 아니다. 이러한 점은 고대의 순수 제사 전통에 잘 드러난다고 주장된다. 다만 제사를 확립한 공자의 잘못은, 하늘에 대한 제사가 천자(天子, 천자는 대제사장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된다)에 의해서 완벽히 대행되고 일반인들은 부모에 대한 제사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데 있다. 이것이 후대에 하늘에 대한 의미가 훼손되고 부모만 강조되는 문제를 낳은 것이다.

저자는 보유론적 논리의 극단에서 원시 유교에 대한 입장을 정리한다. 그는 원시 유교의 天, 上帝는 가톨릭의 천주(天主)와 상통하는 개념이라고 전제한다. 그래서 이후의 서술에서 천이라는 개념을 모두 천주라고 바꾸어서 기술한다(36). 그러한 그 전제는 매우 취약해 보인다. 그는 원시 유교 경전을 인용하면서 천주의 속성(저자는 이 용어의 사용에 반대한다)들을 나열한다. 즉 그 경전들에 따르면, 천은 삼강오륜의 제장자이며, 권선징악을 행하는 이이며, 생살대권(生殺大權)을 지니며, 전지(全知)·전능(全能)·전선(全善)하며, 무소부재, 무형무상(無形無象)한 존재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천주 섬기기에 급급하였으며 결코 천주 없이 살던 민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십계중에서 상삼계는 지키지 않았지만 후칠계를 지켰다. 그들의 천과 인의 윤리는 군신 속에 내포되어 있다. 요컨대, “대개 고대 중국인의 전통적 고유신앙에 의하면, 인간을 위시하며 우주 안에 있는 어천만사(於千萬事)가 다 천주로부터 생래하는, 즉 천주의 생육하시는 바로서, 천주는 곧 만물의 대모인양 믿었는데, 이 천주는 인간의 생육을 희망(希望)하는 마음에서  그의 완성을 위하여 만민주에서 가장 총명유덕한 자를 선정해서 천하를 다스리게 하는 동시에 천자는 천주의 성의(聖意)에 따라서만 정해지는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천주의 이러한 성의는 곧 만민의 여론으로써 나타나는 것이므로써, 중망(衆望)을 부하(負荷)한 유덕의 인사는 곧 천주성의에 합당한 자라해서 천자가 되는 것인데, 비록 천자가 되었다 하더라도 폭정으로써 중망을 실하게 되면 벌써 천주성의에서 이탈된 자로서, 벌써 천자 노릇할 자격이 없는 것으로 믿어왔던 것이다(66-7)”.

현재의 유가들이야말로 이러한 원시 유교와 공자를 배반한 사람들로 지목된다.

천자는 천·인의 중개자로 대제관의 역할을 한다. 그는 교·정·제의 삼권을 하늘로부터 위임받는다. 그는 인민을 대신하여 천주에게 제사할 권한과 책임을 가진다. 그 제사가 교사(郊祀)이다. 이때 하늘이외에 명산대천과 군신(群神)에 제사지냄은 자연현상에 대한 숭배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된다. 이때의 신(神)은 우주적 운행의 펼쳐짐을 뜻한다나?(101-2)


제사에 대한 입장 정리:
 

“제사란 별다른 것이 아니라 한갖 상징적 의식으로서, 인간생활의 물질적 면에 있어서 그때그때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 즉 식료 및 식료품을 비롯하여 의류, 전폐(錢幣) 및 기명(器皿) 등을 자손들이 상징적으로 사자들에게 드리는 것에 불과했던 것으로서, 죽은 부모를 생시때와 같이 대접해 보겠다는 심정에서 벗어나지 않았던 것이다(169-70)”.


그리고 제사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정리하면,

“최초에는 사자 그 자체를 제(祭)함이 없이 오직 그를 오래 기념하기 위하여, 그가 생전에 쓰던 의관 등 유뮬을 거두어 오래 간직해두고, 그 앞에 나아가 그의 생시와 다름없이 그를 추모함으로써 ‘事死如事生’을 하다가, 차차 그 유물을 위한 소가(小家, 宗)를 따로 짓고, 차츰 그것을 묘(廟)로 승격하여 가족 전부를 모아, 함께 추모하기 시작하자, 또한 사자 그 자체까지를 제사(Oblatio)하게 되면서부터 그를 더욱 생생하게 기념하기 위하여, 그의 대포자(尸)로써 그 직계친족 중에서 한사람을 택하여 사자의 의복 등을 입혀 상좌에 앉힐새, 그를 꼭 조상인 양 받들어 그 영접, 접대 등을 가장 장중 엄숙히 하니, 그를 시(尸)라 칭함은 제 비록 그 의식 전반에 걸쳐 중심인물 노릇을 할망정, 마치 송장처럼 전연 수동적으로서 말한마디 하는 법 없고... 이 복잡한 시의 절차를 간편화하기 위하여 꾸며낸 것이 지금의 신주(神主)였나니, 그러기에 애당초 귀신의 내격(來格), 내향(來享)은 꿈에도 생각못했으리라함은 그 정확을 얻었다 할것이다(175-6)”.


결론.
선유의 제사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이단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은 천주의 사자의 영혼 이외의 섬김이 없고, 천주와 사자의 위계가 뚜렷이 구분되었고, 사자에게 비는 화복이 천주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 인식했기 때문이다(193). 그러나 상재상서에서 영적인 존재를 음식으로 보살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한 것(199)과 같이, 제사는 불합리한 점을 지니며 사사로운 주관적인 가상(假想)일 뿐이다(200). 그러므로 천주교가 전래된 지금 시점에서는 가톨릭 의식에 따라 죽은 부모를 섬기는 것이 합당하다(201). 부모를 섬기는 가톨릭적 방식으로는, 발상제(發喪祭, Missa exquialis), 3일·7일·30일의 위친제(爲親祭), 기년제(朞年祭, Missa Anniversaria), 특별 제사, 추사기망제(追思己亡祭) 등이 있다. 이러한 것들이 부모에 대한 정성이 하늘에까지 이를 수 있는 참 제사이고, 참 제사는 신부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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