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랄 아사드는 <종교의 계보학Genealogies of Religion> 서문에서 당시 제3세계 근대화와 관련된 논의들을 다룬다. ‘역사만들기’라는 표제 아래 진행되는 최근 논의들은 제3세계 사람들이 행위주체가 되어서 창조적인 저항행위를 하고 있다는 내용들이다. 아사드는 특유의 논쟁적인 태도로 이 학자들의 논의에 딴지를 건다. 거칠게 말하면 서구의 근대성은 그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굴레가 아니며, 제3세계 행위주체들의 창조적 행위 역시 근대라는 회로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을 냉철하게 인식하지 않으면 낭만적인 이야기로 그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입장이다. 그의 비평은 날카로우나 전망은 어둡다.
Talal Asad, <<Genealogies of Religion>> (Baltimore: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3), Introduction.
1. 책의 주제와 대강의 내용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전제를 지닌다. 서구 역사는 근대 세계를 형성하는데 결정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 그리고 그 역사에 대한 탐구는 인류학의 중요한 관심사라는 것. 이를 위해서는 일단 비서구와 서구의 짝짝이 상황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기독교의 개념적 지형은, 현재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비서구 전통에 심대한 의미를 지닌다. 아사드는 이러한 점에 확신을 갖고 기독교와 기독교 이후의 역사에 대해 인류학적인 탐구를 진행한다.
종교의 계보학이 이 책의 중심 주제이다. 1, 2장에서는 근대의 역사적 대상으로서의 종교의 출현에 대해 다룬다. 3, 4장에서는 중세 기독교를 다루면서 문제에 우회적으로 접근한다. 거기서 다루어지는 것은 육체적 고통의 생산적 역할과 자기부정이라는 미덕으로, 이들은 근대 종교에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요소는 아니며 현대 신학의 관점에서는 고대적(문명화되지 않은) 조건이라 할만하다. 5, 6장에서는 서구와 비서구 역사의 짝짝이 상태에 대해 얘기한다. 5장은 인류학의 번역 문제를, 6장은 비판적 이성이라는 계몽주의 원리가 비서구 전통에 적용되었을 때의 한계를 다룬다. 이 때 번역(translation)은 두 가지 의미에서이다.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해석한다는 것과 성스러운 유골은 한 사원에서 다른 사원으로 나르는 것. 7, 8장은 루시디 사건의 와중에서 종교적 비관용을 비난하는 자유주의의 성토에 대한 응답으로 쓰여졌다.
2. ‘역사만들기’의 문제점
인류학에서 역사는 어떻게 다루어지는가? 이에 대한 최근의 경향을 ‘역사 만들기’라고 이름지을 수 있다. 이것은 능동태의 역사이다. 모든 곳에서 지역 주민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저항하고, 서구 지배자로부터 의미를 빌어오고, 자신의 문화적 실존을 재구성한다.(코마로프의 저작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이러한 역사 개념은 창조자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그 창조의 불안정하고 잡종의 성격을 강조한다. 어떤 때는 ‘세계 체제’나 ‘종속 구조’가 거부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확실성(authenticity), 다른 민족, 단일 문화, 전통 등의 이야기도 거부된다. 아사드는 이러한 경향이 영 마뜩챦다. 그래서 그는 이에 대한 대표적인 논의들을 죽 나열하며 비판하고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①살린스(Marshall Sahlins)
살린스는 세계 체제와 자본주의의 확장으로 문화를 설명하는데 반대하는 입장이다. 그러한 설명에서는 식민화된 사람들, 주변부의 사람들은 자기 역사의 저자로 그려지지 않고 세계적 변화의 수동적 대상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한 입장에서 울프(Eric Wolf)를 비판한다. 울프의 설명은 맑시즘에 기댄 것으로, 비서구인들의 역사를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로 환원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 비판에는 세계 자본주의가 팽창하면 다른 모든 문화사는 끝장난다는 생각이 들어있다. 살린스는 중국, 하와이, 콰키우틀 등지를 열거하면서, 그들 지역에서 일어난 접촉에서 나타난, 지역 주민들의 문화적 논리를 규명하고자 한다.
아사드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수동적 객체가 아니라 역사의 저자라고 했는데, 과연 그 저자라는게 뭐야? ‘저자’에는 이야기를 생산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고, 이야기를 생산할 권리를 포함한 특정한 권력을 정당화하는 사람이라는 뜻도 있지. 전기의 저자라는 말과 삶의 저자라는 말은 엄연히 다른 용법이거든. 그런데 삶의 저자라구? 역사에서 완전한 활동적 주체가 어디 있나? 정말 중요한 건 이거지, 어느 정도까지, 어떤 방식으로 주체일 수 있느냐 하는 것. 살린스는 자본주의가 주변부의 문화를 황폐화시켰다고 말했는데, 그 점에 있어서는 그 사람들이 삶의 저자가 아니라 수동적 객체인거지. 다만 그러한 외부적 힘에 어떻게 적응하느냐에 저자의 몫이 있는거지. 그 외부적 힘을 무시하면 쓰나? 막말로 강제수용소의 사람들도 자신의 문화적 논리를 통해 살아간다. 하지만 그걸 삶의 저자라고,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간다고 할수 있는겐가?” 아사드는 근대 사회가 어차피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들어 있음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논의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②오트너(Sherry Ortner)
오트너도 자본주의의 영향력에 대해 평가절하는 입장이다. 그는 자본주의가 사회, 역사의 동인이라고 인정하기는 한다. 그러나 서구 자본주의는, ‘실제의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삶을 규정할 수는 없는 하나의 추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중심적 관점은 인류학에는 특히 문제가 된다. 여기에는 세계 자본주의는 존재하지만 그것의 영향력은 인류학 작업의 영역을 침해할 수 없는 정도로 제한되어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더 나아가 그는 현지 조사가 강조되는 인류학이 인문 과학에서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다른 체계를 바닥(ground level)으로부터 관찰하려는 시도는, 인류학이 인문 과학에 독특하게 공헌할 수 있는 기본적인, 아마도 기본적일수밖에 없는 점이다.……‘바닥에서’(on the ground)라는 우리의 위치 덕분에, 우리는 사람들을 단순히 ‘체계’의 수동적 반응자나 수행자로 보지 않고 자신의 역사 안에 있는 활동적 행위자나 주체로 볼 수 있다.”
이런 입장에 대해 아사드의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우선 ‘바닥에서’라는 말이 걸린다. 도대체 얼마나 낮길래 다른 관점과는 차별되는 지점을 가질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오트너가 말하는 ‘실제의 사람들’(이 말은 체계가 실제적이지 않다는 뜻을 함축한다)과 ‘바닥’(이 말에는 바닥 외에 다른 층들이 존재하며 이 층들은 바닥에 의존한다는 뜻을 함축한다)이 서로 다른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는데서 발생한다. 이 두 이미지는 이론적 자율성을 규정하기 위해 사용된다.
그러나 사실 인문 과학치고 실제의 사람들을 다루지 않는 학문이 어디 있나? 심지어 정신병학마저도 실제적이지 않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는 실제적인 사람들을 다루는데. 감각적 자료만이 실제적이라는 것은 오래된 경험주의적 편견이다, 수량을 다루는 작업 역시 진짜 인간들의 행위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은 새삼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주장에 전제된 생각인데, 여기서 오트너는 자본주의와 현지인 사이를 갈라놓으려 하고 있다. 요즘 인류학자들이 원시, 부족, 단순(simple), 비문자 대신에 쓰고 있는 현지인(local people)이라는 용어. 이 말이 요상하다. 인류학자들은 이 용어를 통해 인류학의 방법론인 현지 조사의 특권을 보장받고 싶어한다. 그러나 사람은 원래 자리잡힌(local) 존재가 아닌가. 그 사실 자체는 서구인이나 비서구인이나 다를 게 없다. 자리잡혀 있다는 것은 그가 장소에 묶여 있다는 것, 뿌리 박고 있다는 것, 환경에 의해 조건 지워지고 제약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날 공간을 조직하는 것, 어디가 자리이고 자리가 아닌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근대 자본주의의 기획과 근대 민족 국가이다. 그런 식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에, 현지인들은 관찰되고 접근되고 원하는대로 자료화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현지인에 대한 지식(knowledge about local people)이 기어츠 말마따나 현지 지식(local knowledge)은 아니다.
③클리포드(James Clifford)와 아렌트(Hannah Arendt)
지역이라는 뿌리박힌 공간, 그곳에서의 현지 조사를 통해 인류학의 특권을 옹호하려 한 앞의 두 학자에 비해 클리포드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그는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고 이주가 잦은 현대의 상황에서 지역적 차이는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이국적인 것’이 너무 가까워 진 것이다. “문화적 차이는 더 이상 고정되어 있는 이국적 타자성이 아니다. 자기와 타자의 관계는 본질의 문제라기보다는 권력과 수사의 문제이다. 문화와 예술의 확실성(authenticity)에 대한 전반적인 기대 구조가 의문에 파묻혔다.” 모든 이들이 자리에서 벗어난(dislocated) 것이고 아무도 뿌리내리지 못하였다. 확실성 같은 건 존재하기 않기 때문에 빌어쓰고 복사하는 행위는 결여를 의미하지 않는다.
아사드는 심히 불쾌하다. “맞는 얘기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그렇게 신나게 지껄여 대다니, 놀랍군. 동등하지 않은 권력 관계를 염두에 두고서도, 그렇게 인간 주체의 활동 범위가 넓어졌다고 찬양하고 자빠질 수 있나?”
이동(mobility)이라는 동일한 주제에 대한 아렌트의 진지한 성찰을 보자. 그녀는, 산업 사회 도래 이후의 근대 대중에 의한 뿌리뽑힘(uprootedness)과 넘쳐남(superfluousness)이 제국주의의 발흥과 우리 시대의 정치 제도와 사회 전통의 붕괴를 심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녀의 진단은 강한 비관론에 근거하고 과도한 단순화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핵심적인 문제를 간파한 것이다. 지배적 권력이 이동이라는 담론을 통해 어떻게 자신을 실현시키는가의 문제! 아렌트는 잘 알고 있었다. 이동이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다른 행위에 의해 하나의 행위에 포섭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물질적으로 도덕적으로 뿌리뽑힐 때 사람들은 더 쉽게 옮겨지고, 그럴 때 그들은 물질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잉여적일 수 있다. 지리적이고 심리적인 움직임이라는 수단을 통해 근대 권력은 자신을 이미 존재하는 구조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 그 과정은, 존재하는 정체성과 동기들을 잉여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타자를 그들을 자리에 매김하는데 필수적이다. 의미는 창조될 뿐만 아니라 다시 방향지워지고 전복된다.
④레너(Daniel Lerner), 그린블라트(Stephen Greenblatt)
이러한 이동과 근대성의 확실한 연관성에 대해서는 사회학에서 훌륭한 연구가 있다. 중동의 근대화에 대한 레너의 고전적 연구(The Passing of Traditional Society)가 그것이다. 그 책의 주장은, 서구의 근대성은 기본적으로 ‘이동적 인물’(the mobile personality), 즉 움직이고 변화하고 창안하기를 좋아하는 인간 유형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 인물에게 중요한 것은 공감(empathy)으로, 그것은 남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볼 줄 아는 능력이다. 그는 이동적 인물만이 근대적 조건에 창조적으로 관련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낡은 책의 내용에는 비판받을 부분도 많다. 헌데 중요한 것은 80년대 들어 그린발트라는 영문학자가 그 책의 통찰을 새로이 발전시킨 데 있다. 그린발트는 “레너가 ‘동감’이라고 부른 것을 세익스피어는 ‘이아고’(Iago)라고 불렀다”고 말한다. 동감과 이아고에 공유된 사유는 바로 즉흥성(improvisation)으로, 이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자본화하는 능력과 주어진 재료를 자신의 시나리오로 변환하는 능력 모두”를 가리킨다. 그에 따르면, 유럽인의 능력은 토착민들의 원래 있던 정치, 종교, 심지어는 심리 구조에 교묘히 스며들어 그 구조들을 자신의 이익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그는 레너가 유럽인들의 이러한 특성을 파악했다는 것을 지적하면서도, 레너가 그것을 상상적인 관대함, 동정적 이해라는 호의적인 방향으로 잘못 연결했다고 비판한다.
아사드가 이 논의를 통해서 끄집어내고 싶은 것은 그러한 유럽의 인간형이 비서구인들을 새로이 형성해내는 과정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바른 것인지 그른 것인지를 따지자는 게 아니다. 유럽인들이 자신의 인간상을 구원의 근원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전파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야 있겠는가. 중요한 것은, 권력이 비서구인의 동기를 표준화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역사는 과연 누구의 것이겠는가 하는 점이다. 이 때 문제는 개인 주체의 진정성이 아니라, 표준 인간형의 구조와 그것을 확실히 하는 기술이다.
문화적 차용이 남의 문화에 동질화되거나 자기 진정성의 상실은 아니라는 (인류학자들의) 이야기와, 지금 아사드가 이야기하는 기획(project)이 번역 가능한 역사적 구조를 지닌다는 이야기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어떠한 기획이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아갈 때, 한 주체로부터 다른 주체로 옮아갈 때, 권력의 판본(version)들이 생산된다. 새로운 형태의 언어가 서구로부터 획득될 때, 그것은 비서구 사회 활동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기도 하면서 또한 서구와 비서구에 의해 공유된 것으로 형성될 가능성을 제공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권력과 복종의 특수한 형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물론 개인의 선택과 의지에 따라 행위가 만들어지고 그 행위에 의해 역사가 만들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리 주어진 사회 관계와 언어 형태, 그리고 몸의 물질성이, ‘표준적인’ 선택과 의지가 부여된 인간을 형성한다는 기막힌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의미는 단순히 문화적 논리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의미는 관습적 기획, 순간적인 의도, 자연적 사건 등에 다양하게 속해 있다.
⑤오핸론(Roslind O'Hanlon)
그러므로 근대의 판도에서 개인의 자율성이라는 것은 심하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 인도 연구에서 펼쳐진 논쟁을 통해 이 점을 살펴보자. 최근의 인도 연구에는 하위 연구(Subaltern Studies)라고 불리는 연구자 집단이 있다. 그들은 이전의 엘리트중심적 역사 편찬에 반대하여, 종속된 사람들도 자신의 의식(consciousness)을 지니고 있으며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갈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동양학자와 기능주의 인류학자들이 전제한 본질주의도 반대한다.
오핸론은 하위 연구에 대한 비평을 한 적이 있으며, 그 글에서 아사드의 입맛에 맞는 논점을 제시하였다. 그녀는 하위 연구들이 본질주의적 인문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녀에 따르면, 그들은 스스로 구성되는 주체, 외부에는 전혀 기원을 두지 않은 순수한 의식이나 존재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경계해야 한다. 역사나 정체성은 필연적으로 많은 단편들로부터 구성되고 생산되며, 그 단편은 어디에도 본질적으로 소속되지 아니한 것이다. 역사가 그렇게 구성된다고 상정하더라도 종속된 사람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아사드는 바톤을 이어받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역사 만들기’ 명제가 두 가지를 전제한다고 비판한다. 하나는 엘리트 중심의 구조를 뒤엎는 근본적인 변화가 있을 때 역사만들기가 가능하다는 생각이고, 다른 하나는 자율적인 의식이 있을 때만 자신의 역사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다. 첫째로, 엘리트 역사 편찬의 ‘주체-행위자’(subject-agent)를 탈중심화하는 작업이 종속된 사람들을 지배적 권위의 자리에 올려놓는 것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오핸론이 지적했듯이 말이다. 둘째로, 하위 연구가들이 사용하는 ‘의식’이라는 용어가 문제다. 그들은 자기 구성(self-constitution)의 핵심 원리가 의식이라고 주장한다. 의식이 있어야만 많은 단편들로부터 자기정체성을 지닌 주체가 식별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사드는 ‘의식’이라는 추상적은 행위자를 설명하는데 불충분하다고 말한다.
의식 외에도 본능적 반작용, 길들여진 육체, 무의식적 작업 등이 더욱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프로이트의 전이론체계를 들먹일 필요도 없을 것이다. 분명 행위자의 행동은 그의 의식 이상이다.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들의 기획에 속하여 관계의 얽힘 속에 존재하며 누구도 홀로 창시자로 남아있을 수 없다. 그런데 의식을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을 그러한 관계들에 대한 성찰을 훼손시키게 된다. 그렇게 되면 행위를 가능케 한 구조도 행위자의 의식에 의존하는 것으로 기술되는 일이 벌어진다.
행위자(agent)와 주체(subject)는 동일한 이론적 세계에 속하지 않으며 따라서 둘은 연합할 수 없는 개념이다. 행위자가 유효성의 원리에 입각한다면 주체는 의식의 원리에 입각한다.
⑥프라카쉬(Gyan Prakash)
하위 연구가 한 사람의 주장을 살펴보도록 하자. 프라카쉬는 기존의 엘리트 역사가 지닌 형이상학적 흔적들을 폭로하여 철저하게 비판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그는 기존의 역사를 ‘기초 역사’(foundational history)라 명명하는데, 이는 두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환원 불가능한 주체(개인, 계급, 구조)를 갖는 역사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목적론적인 역사(예를 들어, 자본주의의 역사적 서사)라는 의미이다. ‘배제된 역사’를 서술할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선, 위의 두 형태의 기초주의는 거부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굳이 목적론적이라고 말할 것은 없어도, 서사적 역사는 어떠한 정체성을 상정하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인도’라는. 그것이 이질적인 다양한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분석되더라도 그 전체성은 침해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전체성을 보존하는 것에 권력이 작동한다. 흔히 권력은 통일적인 것을 좋아하고 애매한 것을 싫어한다고 생각되는데 사실을 그 반대다. 권력은 오히려 모호함(ambiguity)을 남겨둠으로써, 차별화를 통해서 자신의 입지를 구축하는 구성적인 속성을 지닌다. 이 모호함이야말로 서구 권력에 즉흥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프라카쉬가 근대화 서사가 목적론적이라 하여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역설적이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역사만들기는 그러한 목적론이라는 설정에 의해서 배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의 기획이 민족국가 인도를 형성하였다고 한다면 우리는 목적론에 대해 숙고해보지 않을 수 없다. 근대화에 대한 저항이 이루어지는 것은, 계몽주의가 제공하는 새로운 언어, 영국 식민통치가 제공하는 새로운 정치적 법적 공간에서이기 때문이다. 기획에 대해 반대할 수는 있으며 그래서 반대의 관점에서 그것을 새로 기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서구의 자유 자본주의 국가를 청사진으로 지니는 목적론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역사를 만들어간다는 인간 개념은 이백년 전 유럽에서 제출된 기획이다. 이 기획은 역사적 시간이라는 새로운 경험, 역사성이라는 새로운 개념(고대,중세,근대)과 긴밀히 연계되어 있다. 새로이 창출된 역사 개념은 유럽에 머물지 않고 세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역사는 그러한 보편적 목적론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가능한 개념이다. 화물 숭배가 되었든, 이란 혁명이 되었든, 그들은 단지 헛되이 미래에 저항하거나 역사의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려는 시도를 하고있을 뿐이다.
3. 지금까지 인류학은 무얼 하고 앉았는가, 이 책은 무엇을 지향하는가
인류학은 두 가지 방법으로 근대 역사에 편입된다. 첫째는, 유럽의 정치적, 경제적, 학문적 힘의 성장을 통해서이다. 이를 통해 인류학은 지적 직업으로서의 존재와 지적인 동기를 부여받는다. 둘째는, 인류학에 근대라는 개념적 공간을 제공한 발전적 시간이라는 계몽주의 도식화를 통해서이다. 이것은 인류학이 비유럽과 유럽의 만남으로부터 탄생한 근대의 산물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인류학이 자신의 주제를 잡기 위해 사용하는 사유들(비근대적, 지역적, 전통적)이 흔히 근대의 대칭 개념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근대 인류학이 인간의 다양성에 대해서 이론적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은 르네상스 시기에 ‘야만인’과의 만남에서 비롯된다. 이 만남은 기독교인들에게 신학적인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들을 기독교 창조 신화에 결부시켜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그래서 야만들의 종교적 신앙과 실천에 우선 관심을 두었던 것이고. 어쨋든 야만인들은 르네상스 인간 개념에 혼란을 일으키는 존재였고, 그에 대한 지적 해결은 17세기 후반, 18세기 초에 가서야 이루어졌다. 그것은 존재의 연쇄와 발생의 원리라는 오래된 생각을 종합한 것이었다. 형태들의 공간적 배열은 역사적, 발전적, 진화적 연속으로 전환되었다. 인류는 동일한 인간의 본성을 갖고 있되 성숙함과 계몽의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동시대에 살고 있는 ‘현지인’ 중 일부는 ‘선사시대’, 혹은 ‘중세’로 지칭되었다.
이러한 설명틀은 이후의 인류학에 남아있다. 역사적 시기 구분과 방향성, 문화적 다원성 밑에 전제된 단일한 인간 본성에 대한 설명이 그것이다. 근대의 발달 뒤에는 개념적으로 ‘현지인’이 남아 있고, 그것은 인류학자의 몫으로 배당되었다.
1차 대전 이후에 이러한 진화론적 전제들은 사라졌다고들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말리노프스키나 래그클리프-브라운은 고급문화와 하급문화의 구분과 하급문화의 고급으로의 발달을 거부하지 않았다. 고드프리(Godfrey)와 윌슨(Monica Wilson)은 아프리카의 관계와 사상의 진화를 미개에서 문명이라고 서술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글럭만(Max Gluckman)은 아프라키인들에 의한 ‘백인 문화’의 수용을 발전적인 것으로 묘사하였다. 메이어(Lucy Mair)는 유럽의 아프리카 식민 지배를 문명의 확산으로 말하였다. 메리 더글라스는 진화론적 관점의 중요성을 재확인하였다. 비서구 사회의 사회 변화를 연구한 인류학자들도, 그들의 사회 체계를 (시간적) 평형 상태로 보려는 생각에 머물러 있었다. 중요한 것은 인류학자들이 동시대의 사회와 문화 변화를 다루면서 그것을 비근대적 삶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근대 문명을 다루는 학문들에 비해 인류학은 주변적인 부분들을 다루고 있다. 인류학이 제3세계 지식인들에게 버림받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이다. 그렇다고 해서 인류학이 근대에서 주변적이라는 것은 다시 검토해야 할 전제이다. 인류학이 정치, 경제, 다른 사회 분야의 이론에 공헌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비근대에 대한 인류학의 담론들―원시, 비이성, 신화적, 전통적―은 그러한 분과들에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심층심리학, 신학적 근대주의, 근대 문헌학 등이 인류학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학은 서구에 대한 정의들에 연루된 것으로 보이고 반면에 서구의 기획은 민족지학자들이 대변하고자 한 (비문자, 전자본주의, 전근대) 사람들을 변형시키는 것이다. 양쪽 과정은 체계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 근대성에 ‘진입’(혹은 저항)하는 현지인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인류학자들은 케케묵은 이념 이상의 그 무엇으로 서구에 대한 이해를 더 깊이 있게 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인류학자는, 서구의 권력, 기획, 욕망을 구성한 특정한 역사성, 이동적 권력을 이해하려 시도해야 한다. 그리고 그 구성에서 종교는 긍정적 의미에서든 부정적 의미에서든 본질적인 부분이다.
서구 역사의 단편을 추적하는 이 책의 작업들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일 것이다. 그 작업들은 서구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탐구 대상으로 삼는 역사적 인류학에 기여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그것들은 종교의 서구적 개념과 실천이 역사만들기를 모양짓는 방식을 탐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