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종, 하성래 감수, <<주교요지>>(성황석두루가서원,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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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처음은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 이 내용은 독창적이며, 읽을수록 명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이 지니고 있는 하늘에 대한 믿음을 성공적으로 기독교의 하느님 존재에 연결시키고 있다. 기독교의 한국 선교의 최초의 시기에, 이미 정약종은 한국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짚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한국 고유의 하늘 관념이야말로 한국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늘에 대한 한국인들의 고유의 신학에 기독교를 접목하면서, 죄의식까지 자연스럽게 도입하고 있다.
1. 인심이 스스로 천주 계신 것을 아나니라
“무릇 사람이 하늘을 우러러봄에 그 위에 임자(主)가 계신 것을 아는고로 질통고난(疾痛苦難)을 당하면 앙천축수(仰天祝手)하여 면하기를 바라고, 번개와 우레를 만나면 자기 죄악을 생각하고 마음이 놀랍고 송구하니, 만일 천상에 임자가 아니 계시면 어찌 사람마나 마음이 이러하리오?(11)”
원죄 개념을 우리 조상들이 어떻게 이해하였는가의 문제도 살펴볼 수 있다. 정약종은 다음과 같은 논변을 펼친다. 조선의 위계적인 유교 사회를 바탕으로 한 논변이다. 가장 높은 이에게 저지른 잘못은 그 높이에 비례하여 중한 것이 되고, 연좌제의 적용도 된다는 논리로 기독교 원죄 개념을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흥미롭다.
한 사람이 묻되,
“원조의 실과(實果) 먹은 죄가 무슨 큰 죄이기에, 그 벌이 이렇듯이 중하고 또 자손에게까지 미침은 어찜이뇨?”
대답하되,
“죄악의 경하고 중함이 죄 지은 곳이 높고 낮은 데 달렸으니, 말하자면 백성이 원에게 죄를 지었으면 그 형벌이 태장(笞杖)을 받을 것이요, 감사에게 지었으면 형추(刑推)를 당할 것이요. 임금께 지었으면 죽기를 면치 못할 것이니, 죄는 한가지라도, 죄 지은 곳이 더욱 높을수록 그 형벌이 더욱 중한지라, 이제 원조의 실과 먹은 죄가 무궁히 높으신 천주께 범하였으니, 천주 무궁히 높으신즉 그 죄가 무궁히 중할 것이요, 그 죄기 무궁한 즉 그 형벌도 무궁할 것이니, 어찌 무궁한 괴로움을 면하며, 또 만세자손인들 어찌 그 벌을 면하리오? 비컨대, 사람의 조상이 임금에게 득죄하였으면 그 자손이 대대로 변방에 충군하고 위노하는 법이 있으니, 원조의 벌이 그 자손까지 연루함을 어찌 마땅치 않다 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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