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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문화/크리스마스

200년 전의 크리스마스

by 방가房家 2023. 4. 19.

[크리스마스 싸움](Nissenbaum, Stephen, The Battle for Christmas, New York: Alfred A. Knopf, 1997.)이라는 책의 1장을 정리한 내용이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라는 새로운 명절이 어떻게 탄생하였는가를 다루는 흥미진진한 책이다. 1장의 내용은 크리스마스의 본고장 미국에서 크리스마스를 금지했던 짧지 않은 역사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내용이라 읽으면서 상당히 놀랐다. 게다가 200년 전의 크리스마스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지금과는 얼마나 다른 날이었는지! 충격적일 정도로 흥미로웠다. 번역하면 우리나라에서도 꽤 팔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내심 점찍어둔 책이기도 하다.


지금으로부터 200여년 전의 크리스마스를 머리 속에 떠올리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가 이미 갖고 있는 크리스마스에 대한 이미지를 박박 지워버려야 한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크리스마스는 19세기 중반 미국인(특히 뉴요커)들에 의해 완전히 새로 만들어진 날이기 때문이다. 근대에 만들어졌으면서도 되게 오래된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이 날은 홉스봄이 말한 전통의 창안(the invention of tradition)의 전형적인 예가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창안의 과정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단지 크리스마스의 역사를 말한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우리에게 머리가 버쩍 깨이게 하는 충격을 준다. 영원한 진리랄 것까지는 없어도 유규한 전통으로 알고 있었던 것들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태생한 것이라는 놀라움. 종교사에서 늘상 만나면서도 다시 겪는 그 놀라움.

이 책의 1장은 크리스마스 금지령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크리스마스가 금지되었다는 이야기가 낯설게 들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 개혁기의 청교도들에게 크리스마스는 금지된 날이었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왜 그들은 크리스마스를 혐오했을까? 일단 신학적인 이유를 들자면, 크리스마스에는 성서적 근거가 전혀 없다. 예수 탄생이 12월 25일이라는 말은 성서에 전혀 없다. 그것은 단순히 동지 근처에 펼쳐졌던 로마 농신제 풍습이 기독교적 외양을 뒤집어 쓴 것이 뿐이다. 한마디로 그것은 이교의 풍습이다.

그러나 니센바움은 그런 명목상의 이유 말고 진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금지가 철저하게 시행된 것은 미국의 뉴잉글랜드에서 였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가 금지된 이유는 그 날이 중세적 카니발리즘이 행해지는, 매우 난폭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의 크리스마스 광경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난폭한 군중들은 폭식, 음주, 기성 권력 흉내내기, 공격적인 구걸행각, 부유한 집 침입하기 등의 행위를 선보였다."(5) 그날은 전도(reversal)의 축제가 행해지는 날이었다. 하층민들이 모여 깽판을 놓는 날이었다. 바로 그러한 크리스마스가 금지되었던 것이다.

깽판치는 크리스마스는 중세 농경 문화에서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던 날이었다. 크리스마스 기간인 12월은 농사짓는 사람들의 일이 극소화되는 시점이어서 놀 수 밖에 없는 기간이었다. 그리고 냉동 보관이 없던 시절, 겨울철은 육류를 도살하여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시기였다. 그러니 추수한 음식과 함께 술과 고기를 배터지게 먹고 마시는 시기가 크리스마스 기간에 해당되었다. 당시에 불리어진 크리스마스 캐롤은 폭동의 노래였다고 한다. 또 중세 크리스마스 풍습 중에 엉터리왕(misrlue)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가짜 왕을 내세워 놓고 조롱하는 것으로 당시의 정황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 풍습은 현대 크리스마스에서는 완전히 제거되었다.

처음에 크리스마스를 규제한 것은 영국의 청교도들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얼마 못 갔다. 크롬웰 통치가 끝나면서 금지령은 거의 없던 일이 되다시피 하였다. 반면에 청교도들이 이주한 뉴잉글랜드에서는 강력한 규제가 실시되었다. 1659년부터 1681년까지 크리스마스를 지키는 일은 '불법'이었다. 크리스마스가 공식적인 휴일로 인정된 것은 19세기 중반 들어서였다. 규제가 실시되는 동안, 몰래 숨어서 크리스마스를 지키고 이를 단속하는 모습이 벌어진다. 업주들은 크리스마스날 일 안하는 노동자들을 신고하였다. 크리스마스는 달력에서 삭제되었다. 몰론 이 규제에는 산업화의 논리가 숨어있다. 크리스마스를 억압하는 것은 노동자들, 하층민들의 결집과 단체행동을, 그들의 깽판 크리스마스를 규제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 분위기는 1680년대 뉴잉글랜드가 영국(이미 영국은 크리스마스를 인정하고 있었다)의 직할 통치를 받을 때 변화한다. 3년의 통치 기간 동안이나마 크리스마스는 해금된다. 직할 통치가 끝나고 다시 억업이 시작되지만 이미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무턱대고 막을 수는 없게 되었다. 그러자 엘리트들은 이제 크리스마스를 새로운 방식으로 지내는 것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다시 말해 위험한 깽판 크리스마스를 정화해 조용하게 치룰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벤자민 프랭클린이 제안한 신풍속도는 '명랑 건전 크리스마스'였다. 이러한 노력은 크리스마스를 경건한 날로 보내자는 종교계의 목소리와도 연결된다. 대각성 운동 기간의 목소리들, 유니테리언파의 노력은 크리스마스를 술 퍼먹는 날이 아니라 신을 모시는 날로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캠패인들이 완전히 성공한 것은 아니었다. 18세기, 이럭저럭 크리스마스는 살아나게 되었지만, 이것을 지키는 양상은 계층에 따라 양분되었다. 상류층은 건전 크리스마스를, 하층은 깽판 크리스마스를 지키며 대립하였다. 이 대립이 해소되고 자본주의적이며 현대적인 모습의 크리스마스가 나타나는 것은 1820년 들어서이다. (그것은 2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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