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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례문화

할로윈 단상

by 방가房家 2023. 4. 18.

(2004.11.6)

지난 할로윈 때 템피 시내를 돌아다녔다. 거리는 할로윈 복장을 차려입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잘생긴 남자들, 예쁜 여자들, 섹시한 복장들, 기기묘묘한 복장들 사이를 한시간이 넘도록 돌아다녔는데, 그 때 같이 갔던 친구가 사진을 찍은 것을 멋지게 편집해서 보내주어 여기 올린다.


옆의 사진은 화려한 할로윈의 행렬 사이에서 “지저스 크라이스트”를 외치는 아저씨의 모습이다. 이들에게 할로윈은 악마적이고 세속적인 행사에 다름 아니다. 대여섯 명의 교회 사람들이 나와 성서 말씀이 쓰인 피켓을 들고 설교를 하고 있었다.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내 눈에 먼저 꽂히는 게 그들이었고 친구한테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을 했던 것이다. 연말이 되면 신촌에서 회개하고 예수 믿고 집에 빨리 들어가라고 피켓 들고 행진하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있다. 여기서도 세속의 흥청거림에 초를 치는 교회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의 행위가 할로윈이라는 전체 맥락 속에 녹아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저 재미있게 혹은 진지하게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나간다. 이 사람들의 설교는 축제에 재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퍼포먼스로, 축제의 일부로 포용되어 있다.
할로윈 복장에 대한 분석을 할 정도는 못된다. 다만 눈에 띄는 것은 전통적인 할로윈 복장보다는 영화로부터 비롯한 복장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베스트로 생각한 복장은 킬 빌 흉내를 낸 노란 츄리닝 입은 백인 여자애였는데 사진에는 없다. 사진에서는 슈렉, 제다이, 여자 경찰, 반지의 제왕 복장들이 인상적이었다.




할로윈 때 떠오른 생각을 하나 덧붙인다.
할로윈은 철저하게 상업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날이다. 아이들을 위해서 많은 양의 사탕과 초코렛이 판매된다. 애들이 집에 찾아오면 사탕을 한 움큼 쥐어주어야 하는 풍습(trick or treat)이 있기 때문에 각 집에서 사탕을 미리 사 둔다. 호박을 비롯해 할로윈을 장식하는 소품들이 판매되고, 할로윈 복장(꽤 비쌀 거다)이 판매된다. 또 할로윈 저녁은 무서운 영화를 보는 날이기 때문에 영화 산업 역시 흥청거린다.
명절들이 상업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은 할로윈뿐만이 아니다. 미국의 가장 큰 명절인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야말로 엄청난 규모의 쇼핑과 결부되어 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미국 가게들은 1년 매상의 거의 40%를 추수감사절-크리스마스 시즌에 올린다고 들었다. (크리스마스에 대해서는 앞으로 거듭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오늘은 간단히...) 미국의 사례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스러운 날이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크리스마스 때마다 교회에서 흔히 들리는 이야기가 있다. 현대의 물질화된 크리스마스를 비판하면서 크리스마스 본연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것. 이런 이야기에는 세속과 초월, 물질과 정신이라는 이분법이 전제되어 있기 마련인데, 나는 그러한 개념이 성스러운 날들을 설명하는 데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으로 따지고 든다면 현대의 크리스마스는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의 성립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이다. 도대체 선물이 빠지면 크리스마스가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날이 될 수 있을까? 심지어는 크리스마스 전날 나이트 입장료와 여관값이 따불이 되는 불경스러운 현상마저도 크리스마스를 의미 있는 날로 만드는 요소들이다. 성스러운 날은 의미 있는 날이고, 의미 있는 날은 중요한 날이고, 현대인에게 중요하다는 것은 경제적인 실체와 연관된다.
추석과 설날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날이다. 그것은 제사상 차리기, 고향 방문, 세뱃돈, 추석 대목 등의 경제 현상들과 연관되기 때문에 중요하다. 조상과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추상적인 의미는 이들 경제적 교환들을 빼면 성립할 수가 없다. 의미가 우선이냐 돈이 우선이냐 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다. 석탄일이 되기 전에 연등을 달기 위한 대규모의 거래가 일어난다. 3만원 짜리가 되었든 5만원 혹은 10만원짜리가 되었든, 시주를 하고 진리의 빛을 밝힐 권리를 부여받는 거래가 이루어진다. 이 거래가 이전에는 그저 그런 날이었던 석탄일을 요즘 들어 생기가 넘치는 날로 만들어주는 중요한 요소이다. 자본주의 체제 안의 존재 방식을 획득함으로써 의미 있는 날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 풍습이 사라져 간다고 개탄을 한다. 그러나 전통적인 날들이 여전히 의미를 지니려면 그것이 경제적인 현상이 되어야 한다. 단오가 의미 있는 날이 되려면 그 시즌에 청포 샴푸가 마구 팔려야 한다. 지금도 강릉 지방에서는 단오제라는 지역 관광 산업에 도움이 되는 행사로 인해 단오의 의미가 있다. 칠월 칠석이 잊혀지지 않으려면 젊은 연인들을 위한 다양한 아이템들이 판매되어야 한다.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를 압도하는 상업적 기획이 도입되어야 한다. 남녀가 서로 수작을 부려볼 수 있는 날이 될 때, 그 날이 의미 있는 날로 존속하게 된다. 동짓날이 의미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팥죽을 열심히 사먹어야 한다. 더불어 다음해 달력을 주고받는 행위(조선 시대 때는 동짓날에 이 일을 하였다)를 이 날 하도록 달력 업계에서 부추겨야 한다. 오늘날 정월대보름을 지키고 있는 미약한 힘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곡밥과 부스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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