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24일 엠비씨에서 방영된 베스트극장 606화 <베리 메리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제작된 우리나라 드라마 중에서 수작에 속한다. 세 개의 소품들이 엮여 있는데, 각각의 이야기에서 크리스마스를 통한 화해를 그리고 있다. 전형적인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아니다. 화해의 정신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너무 교훈적이랄까 하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 화해가 우리 사회 곳곳을 가로질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다시 말해 사회의 모습이 잘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괜찮은 크리스마스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전공상 내 관심을 끄는 것은 종교 간의 관계를 다룬 단연 세번째 이야기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첫번째 이야기는 가족간의 화해이다. 반항적인 딸과 재혼하려고 하는 어머니의 화해, 다른 측면에서는 딸과 어머니 남자친구와의 화해라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반항적인 딸의 역할을 한 배우가 박신혜다. (박신혜 양은 올해 들어 주목받고 있는 어린 배우로, 가능성을 인정받아 <천국의 나무>라는 미니시리즈의 주연으로 발탁되기까지 한다. 드라마 자체가 워낙 쉣 드라마라 주목은 못 받았지만, 거기서 보여준 실력은 괜찮았다. 일본어 연기까지 소화했으니. 또한, 조기 종영되는 바람에 빛을 못 보았지만, 연초에는 <귀엽거나 미치거나>에서 아주 이쁜 모습을 보여주었다.) 초기 연기인 이 작품에서 박신혜는 싸가지 없는 여자애 역할을 잘 해낸다. 연기의 싹수가 보인다고나 할까. 한편 엄마의 ‘느끼한’ 남자친구 역할로 나온 이는 안석환이다. 나는 각종 드라마에서 감초처럼 등장하는 안석환씨의 연기를 매우 좋아하는데, 여기서의 연기도 일품이다. 느끼함과 은근함의 경계를 넘나드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두번째 이야기는 동남아계 노동자를 다룬다. 읍내 다방 여급(정다혜)과 방글라데시에서 온 불법 체류 노동자 간의 애틋한 정. 크리스마스 드라마에서 이런 소재를 다루었다는 것만으로도 높이 사주어야 하지 않을까.
세번째 이야기에서 개신교와 불교의 만남의 모습이 다루어진다. 목사님 손녀와 동자승의 우정(사랑)이라는 재미있는 설정. 여자애 마리는 전형적인 개신교 집안의 아이로 부모님은 아프리카로 전도나가 있고 읍내 교회의 목사님인 할아버지와 함께 지내고 있다. 학교에서 꼬마 스님 ‘동자’와 친하게 지낸다. 동자 역할로 열연하는 아이는, 올해 <환상의 커플>에서 “어린이들” 중 맏이를 연기해 엄청난 인지도를 누리고 있는 이석민 군이다. (오지호의 연기가 썩 뛰어나지는 못한 탓에, <환상의 커플>에서 나상실(한예슬)과 장철수(오지호)의 연애라인보다는 나상실과 “어린이들” 간의 감정선이 더 살아있다는 평이 있을 정도이다.)
둘은 학교에서 친하게 지내기 때문에, 중하고 연애한다는 놀림을 받기도 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아이들이 놀리자 마리가 주저앉아 운다. 동자는 어쩔 줄 몰라 한다.
화가 난 마리가 동자에게 쏘아붙인다.
마리: “야, 너 남자 맞어? 한 대씩만 때려주지.”
동자: “난 다른 남자애들이랑 똑같이 행동할 수 없어”
마리: “어째서?”
동자: “난 중생을 구제해야 하니까.”
마리: “치, 잘났다.”
마리는 삐져서 가고, 동자가 열심히 따라간다. 따라오는 동자에게 한마디,
“됐어, 너 가서 중생이나 구제하셔.”
마리는 동자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고 자기 교회 크리스마스 파티에 초대한다. 동자는 고민하다가 주지 스님께 말씀드려보지만 안된다는 이야기만 듣는다. 그러나 정작 크리스마스 이브에 스님은 동자를 차로 교회까지 데려다 주시고, 동자는 마리와 함께 교회에서 크리스마스 연극을 보게 된다.
앞줄에 앉아계신 목사님 할아버지께 합장하는 동자.
마리의 아이디어로 동자는 아이들의 크리스마스 연극에 동참하게 하는데, 동자의 역할은 누워있는 아기 예수님.
연극이 끝나고 선물을 안고 절에 돌아온 동자는 절에서 환호성을 지른다. 절에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 있는 것. 동자승 인형에 장식이 되어 있고, 탑이 크리스마스 트리를 이루고 있는 것. 동자가 탑 주위를 덩실덩실 도는 장면에서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절에서 크리스마스 축하를 해주는 이 훈훈한 모습은 사실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이제 많은 절에서 성탄 축하 메시지를 보낸다. 몇 년 전 화계사에서 한신대 쪽에 성탄 축하 메시지를 보낸 것도 그렇고, 어제도 봉은사 앞에 가보았더니 경내에 트리 장식이 있고 절 앞에는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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