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Bare Facts of Ritual"이라는 글에서 조나단 스미스는 북미 원주민의 곰사냥 의례에 대해 이야기한다. 북미 원주민은 자연물과 유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친구인 곰을 사냥해서 죽인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 된다. 그래서 곰사냥 의례는 이러 식으로 진행된다. 우선 사냥꾼은 목욕재계를 하고 담배를 하늘에 올려 식을 준비한다. 인간 세계를 떠나 숲의 세계에 들어가는데, 숲에서는 손님에 대한 선물로 음식, 즉 곰을 내어준다. 선물로 주어진 곰에 대한 의례적 살해가 진행된다. 곰은 일대일로 사냥꾼과 대면하며, 사냥꾼은 그를 달래주는 노래를 해준 후 피를 흘리지 않는 방법으로 곰을 죽인 후 시체를 소중히 갖고 돌아와 의례 규정에 따라 고기를 가르고 처리한다.
이상이 전통적인 의례 규범이고 종래의 연구들이 기록했던 부분이다. 그러나 저자가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상식적인 부분이다. 실제로 곰사냥이 진행될 때 곰과 사람이 일대일로 대면하고 예의를 차리며 곰이 살해되는 일이 일어나는가? 곰이 사냥꾼의 무기에 스스로 자해를 해서 상처없이 죽어주어 숲의 선물로 주어지는 일이 있는가? 그럴 리가 없다. 곰 의례는 실제로는 곰 사냥이다. 실제로는 사냥꾼은 함정을 파거나 올가미를 놓거나 창으로 찔러서, 혹은 요즘의 경우에는 총으로 쏴서 곰을 사냥할 수밖에 없다. 이념적으로 지니고 있는 의례의 내용과 현실의 의례 수행에는 필연적인 간극이 있다. 연구자는 이상적인 의례를 서술하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은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의례의 핵심을 놓치는 것이라고 스미스는 지적한다. 의례 개념을 머릿속에 넣어두면서도 항상 틀어지는 상황을 그에 맞추어가는 것, 돌발 변수를 의미화하는 것, 때에 따라 적절히 수정해가는 것이 의례 수행자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의례는 변수들이 돌발하는 상황을 통제하는 기술이다. “의례는 일상적이고 통제되지 않는 일의 진행을 그러모아 의례화된 완전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실제로 그러한 것(the way things are)에 대해 의식적으로 긴장을 한 상태에서 응당 그래야 하는 것(the way things ought to be)을 수행하는 수단이다.” (63) 틀어지는 것들(discrepancy)을 모양새 좋게 마름질하는 것이 종교의 핵심적인 사유이다.
<<똑바로 살아라>>의 대미를 장식하는 리나와 재환의 결혼식은 김흥수의 사회로 진행된다. 쏟아지는 돌발상황들 속에서 아수라장이 되어버릴뻔한 결혼식을 사회자 흥수는 식순이 이리저리 바꾸고 추가하고 생략하며 끝까지 진행하는 데 성공한다. 경쾌한 음악과 함께 바뀐 식순을 거듭해서 보여주는 연출자는 의례에서 중요한 것이 당위와 현실간의 끊임없는 밀고당김이라는 것을 확실히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결혼은 단 한번도 당사자의 시각에서 보여지지 않는다. 당사자 재환을 포함한 주변 인물들은 사고치는 돌발 변수들이며, 김흥수는 이 난관을, 통제되지 않는 현실을 보듬어 의례의 꼴로 수습하는 능력을 보여준다.
김병욱 PD만큼 결혼식에 대해 냉정한 시각을 보여주는 드라마 연출자는 없을 것이다. 다른 작품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의 중반부 분수령이 되었던 종옥과 홍렬의 결혼식 역시 만만치 않게 독특한 시각에서 그려졌다. 결혼 당사자인 둘의 행복한 감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등장하지 않고 주변사람들의 인간적인 갈등(예를 들어 옛날 혼수에 대해 감정의 앙금이 남아있는 정수와 노구의 다툼)만 그려진 결혼식이었다. 이 역시 결혼 의례에 대한 훌륭한 관찰이다. 결혼이 되었든 장례가 되었든 우린 사회의 의례는 주변사람들의 인간관계가 극적으로 충돌하고 확대경 아래 놓여져 증폭되는 현장이 아닌가. 종옥과 홍렬의 결혼식은 우리나라 의례에 대한 좋은 보고서이다. 리나와 재환의 결혼식의 예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결혼에서 본질적인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에 의례의 핵심적인 역할이 숨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