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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자료/선교사문헌

게일의 한국종교 서술(1898)

by 방가房家 2009. 12. 4.
James Scarth Gale, Korean Sketches (New York: Fleming H. Revell, 1898), 213-19.

일부 부주의한 관찰자들이 한국에 종교 체계(religious system)가 없다고 말해 왔다. 그러한 진술들의 영향은 미국의 신문들에 자주 나타나기 때문에, 이 오해의 이유를 밝힐 필요가 있다. 그런 오해가 나타나는 이유는 아마도 한국에선 어떤 종교도 한국인의 국가 생활에서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왕으로부터 노비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모든 존재들은 조상 숭배 체제와 얽혀 있으므로—한국인의 삶의 세세한 일상에 아주 미묘하게 들어와 있는 것을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기 십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새해에는 집집마다 제사 음식이 한 상 차려진 것을 볼 수 있다. 가장 가난한 집에서도 조상들의 정령 앞에 화려한 상차림을 내려 노력한다. 과일, 밥, 고기, 증류주, 향, 초 등이 조상 숭배를 위한 품목들의 일부이다. 한국인들은 기름때 낀 옷을 벗어놓고 밤새 깨끗한 복장으로 앉아 있는다. 첫 닭이 울 때 위패 앞의 초가 밝혀진다―위패는 호두나무 판 둘을 맞대어 붙인 것으로, 그 사이에는 정령이 살고 있다는 구멍이 나 있다. 숭배자들은 절하고 술을 돌리고 영혼들께 제사상을 거두어 달라고 호소한다. 한 명씩 인사를 드리고 난 후에는, 정령들이 산 사람들에 방해받지 않고 제물을 흠향(歆饗)할 수 있도록 방에서 나와서 문을 걸어 잠근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무리지어 마지막까지 계속 절을 한다. 마지막에 그들은 정령이 남기고 간 음식으로 상을 차려 잔치를 한다―이 저녁을 먹으면 지상의 복이 생긴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나타나는 것은 소화불량과 며칠 동안 가난한 사람들이 겪어야 할 빈 호주머니이다.
새해가 하나 있는 제사 기간이긴 하지만, 그 시기가 모든 제사들을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돌아가신 뒤 3년 동안 자녀들은 밤낮으로 망자들이 기거했던 방 앞에 밥, 고기, 담배를 갖다놓고 묘소 앞에도 많은 제물을 놓는다. 궁궐에서부터 가장 비천한 초가에 이르기까지 삼년상과 매일 드리는 제사는 매우 엄격하게 지켜진다. 그 기간 동안 왕가(王家)는 왕조의 번영이 제사에 달려있다고 믿으면서 망자의 정령을 모시는 일에 매달린다.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에는 음식을 가져와서 장대를 짚고 크게 곡을 해서 아버지의 혼령 앞에 울려 퍼지도록 한다. 이 기간 후에는 직접 제사 드리는 것은 일 년 중 중요한 6일―네 민족 축일, 그리고 생일과 기일―로 제한한다. 조상의 고향에서 떠나 있는 한국인은 반도 끝 가장 먼 곳에서라도 걸어와서 필요하다면 묘소 앞에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야 한다. 나는 종교 의식에 대한 이런 신실함을 가장 엄격한 가톨릭 신자(Romanists)에서도 본 일이 없고, 이슬람교인(Mohammedans)이나 힌두교인(Hinduss) 중에서도 이를 능가하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없다.
이 제사들의 보편성에 대해 말하면, 약간의 불교인이나 몇 명 안 되는 기독교인들을 제외하고는 이 제사가 지켜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제사를 무시하는 것은 조상들의 나라에서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그는 “살지 말아야 할 개”가 된다. 김씨가 관습에 따라 친척 어른에 예를 표하러 갔다고 한다. 그를 맞은 첫 마디는 “너는 제사에 늦게 오는 잘못을 저질렀다!”였다. 김씨는 말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다시는 제사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 후에 쫓겨나 당신과 함께 지낼 때 나는 친척 한 명도 갖지 못했습니다. 개새끼가 되어 조상을 잊는 놈이라고 욕만 먹습니다.” 성스러운 관습을 어기는 것은 한 남자의 인생의 값어치를 하는 것이다.
제사 사이의 시간은 길한 장지(葬地)를 찾으러 산을 다니는 데 할애된다. 장지를 고르는 데는 많은 사항이 고려된다. 적당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방법들이 너무 복잡하고 뒤섞여 있어서, 다수의 사람들이 풍수(geomancy)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여 업으로 삼고 있다. 무덤은 가능한 한 한쪽은 청룡, 다른 쪽은 백호라고 불리는 산마루를 양팔처럼 지니는 산등성이 위에 정해진다. 정면에는 안산(案山)이라고 불리는 산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망자의 가족을 지켜주기 위해 서 있는 것으로, 안산이 없으면 무덤의 운이 계곡으로 흘러내려 흩어질 것이다. 또 개울과 지표수가 흘러나갈 출구가 필요하다. 이상이 무덤 자리의 개요이다. 그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안산 양편의 특별한 봉우리들을 찾는 것이다. 하나는 가족의 장수를 의미하고 다른 하나는 다산, 또 다른 하나는 부를 의미한다. 왼편이나 오른편의 모든 산봉우리들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지관(geomancer)들은 전문적인 이해를 통해 그것을 알아낸다.
매장 후 한국인은 조상 무덤에 접근하거나 침범하는 사람이 없나 살피는데, 이는 실질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만일 산 사람을 옷입히고 먹일 것이냐 아니면 망자가 머무는 곳의 외관을 꾸밀 것이냐를 선택해야 한다면, 한국인은 단숨에 후자의 편을 선택할 것이다. 집안에 재앙이 거듭 일어나면 그들은 조상의 뼈를 파내어 다른 곳에 묻음으로써 정령을 달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정한 지역이 누군가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모든 산, 바위, 나무에는 정령들이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또한 집에서 매년 지내는 제사에서부터 음식, 기도, 벽에 붙어있는 문자로 모셔지는 수호 정령에 대한 개념이 생겨났다. 독사의 한 종(種)은 흔히 기와 아래 둥지를 틀고 초가집 지붕을 휘감고 있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수호 관념과 연결되었고 뱀 중에서도 기도와 제물로 예배를 받는 종류가 되었다. 여기에 수호신 용(龍)과 같은 다른 정령들을 추가할 수 있겠다. 사람들은 용이 거한다고 여겨지는 우물에 음식을 빠뜨려서 제사를 드린다. 이 수호 정령에는 족제비, 돼지, 온갖 종류의 불결한 동물이 포함되어 있어, 매년 많은 날들이 종교 의례를 하는 데 반복적으로 소요된다.
한국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한국에 두 종교가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나는 문명화된 세련된 종교로, 조상 숭배라고 이해된다. 다른 하나는 도처에 있는 이교적인(heathenish) 것으로, 가장 저열한 형태의 주물숭배(fetichism)이다. 그러나 한국인들 자신은 그런 구분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를 귀신 숭배(kwisin worship)라고 부른다. 귀신은 중국어와 한국어 신약성경에서 ‘데몬’(demon)의 번역어이다. 그들은 자신의 숭배가 모두 하나의 기원을 가진다고 주장하는데, 이것은 <고린도전서> 10장 20절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이방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들께, 특히 부모 사후에 효도하는 이들을 명예로이 여기는 분위기 때문에 이 땅에는 작은 사당들이 흩어져 있다. 지금 나의 집 근처에는 약 150년 전에 세워진 비석에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져져 있다. “김익빈, 10세 때 아버지를 여윈 효자. 그의 통곡은 성인과 마찬가지였다. 그의 살은 흩어지고 뼈만 남아있다. 17세에 제사 기간이 돌아왔을 때 장마 때문에 생선이 준비되지 못했다. 그는 바닷가에 나가 울며 고통스럽게 기도를 올렸다. 그 때, 물 속에서 물고기 한 마리가 나와 그의 발치에 놓였다. 그의 효성을 볼 수 있는 일이 한 번 더 있었다. 산에 불이 나 아버지의 묘소 쪽으로 번져가 정령을 불사르려고 하자, 그는 목숨을 걸고 뛰어가서 신들에게 조상의 자리를 보존해달라고 빌었다. 그러자 비가 억수처럼 쏟아져 불을 껐다. 그가 어찌 효자가 아니겠는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지는 책들에는 왕, 부모, 형 등에 대한 희생이라는 주제가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오륜’(五倫)―한국에선 입문 단계부터 모두에게 잘 알려진 책―에서 한 이야기를 번역해서 제공하도록 하겠다. “한나라 때 정성 지역에 동영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동영에겐 성대한 장례를 치를 재산이 없어서, 돈을 갖지 못하면 노비가 되겠다는 조건으로 만 냥을 빌렸다. 장례에서 돌아오면서 그는 노비가 될 참이었는데, 한 규수가 나타나 자신을 아내로 삼아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동영이 놀라 대답하였다. ‘나는 너무 가난하여 이제 노비가 될 참인데, 어찌하여 당신은 나의 부인이 되려고 하오?’ 규수가 답하였다. ‘나는 당신의 부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뿐입니다. 당신의 가난과 힘든 처지는 부끄러울 것이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그녀를 맞아들였다. 주인은 그녀에게 어던 힘든 일도 할 수 있냐고 물었다. 그녀는 ‘베를 짤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주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렇다면 비단 삼백 필을 한 달 안에 끝내다오. 그렇게 하면 둘 다에게 자유를 주마.’ 이것은 평생 해도 다할 수 없는 양이었다. 한 달 안에 비단 삼백 필이 완성되자, 주인은 겁에 질려 당장 그들을 내보냈다. 그들이 처음 만났던 곳에 도착해서 그녀는 동영에게 말했다. ‘이제 떠나야 하겠습니다. 나는 직녀성에서 온 여자입니다. 하늘이 당신의 효성을 보고 감동을 받아 당신의 빚을 갚아주러 나를 보낸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그녀는 하늘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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