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써 두었던 글을 퍼옵니다. 요즘 제 홈페이지의 게시판이 불안정해서, 어차피 잘 쓰지도 않는 게시판이나 정리도 할 겸, 버리기는 아까운 글만 몇 개 여기 블로그에 옮깁니다.)
츠바이크라는 전기작가의 [폭력에 대항한 양심 -칼뱅에 맞선 카스텔리오]중의 한 구절. 이 책은 개신교의 아버지로서 한국에서 참으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인 칼뱅을 지독하게 냉혈한 한 독재자로서 그리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자신의 신앙을 절대적인 것으로 내세운 나머지 다른 주장에 대해서 극히 비관용적이었고, 교리족 차이를 용납하지 못한 나머지 세르베토를 사형시킨다. 인문주의적 이상을 지닌, 그리고 교리적으로는 칼뱅의 예정설에 반대한 입장이었던 카스텔리오는 무시무시한 이 종교 권력자에게 당당헤게 항변하였다는 것이 대강의 줄거리. 사실 칼뱅에 대한 이 책의 관점은 기존의 관점을 뒤집는 통렬한 맛이 있긴 하지만 일면적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저자 자신이 염려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요즘 말로 하면 저널리즘적인 글쓰기의 대표적인 유형이다. 학자들은 자료의 해석을 놓고 신중을 기하는 것이 미덕으로 되어 있다. 반면에 저널리즘, 혹은 소설가는 자료가 갖는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하는 구상을 한다. 이 글에서 그려진 칼뱅은 저자가 가진 독재자의 이미지에 투영되어 적대적인 자료들을 통해서만 구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가정에서 출발해 화려한 표현으로 당대의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러한 글쓰기는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할 수가 있다.
어쨋든 저자의 생생한 묘사는 놀랍다. 칼뱅의 초상을 통해서 그의 성격을 낱낱이 해부하는 능력은 가히 압권이다. 다음이 그의 인상적인 묘사이다. (책에 실린 이미지를 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다른 사진들이 주는 인상도 대체로 비슷하다)
그의 얼굴을 한 번 바라보자. 그러면 이 교리가 이전의 어떤 기독교 해석보다 더욱 냉혹하고 불친절하고 기쁨을 모르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칼뱅의 얼굴은 알프스 산맥의 석회암 지형과 닮았다. 저 고독하게 동떨어져 있는 바위의 모습, 그 말없는 폐쇄성 속에는 신이 깃들수 있을 뿐, 인간적인 그 어떤 것도 자리잡을 수 없는 모습이다.
선의도 위안도 나이도 보이지 않는 이 금욕주의자의 얼굴에는, 삶을 풍성하고 충만하고 즐겁게 꽃피우고 따뜻하고 감각적으로 만드는 모든 것이 결핍되어 있다. 깡마르고 기다란 타원형의 얼굴에 깃든 어떠한 모습도 모두 딱딱하고 추악하고 역겹고 조화가 없다. 좁고 엄격한 이마, 그 아래로 밤을 샌 듯한 두개의 깊은 눈이 석탄추럼 이글거리고, 날카로운 매부리코는 움푹 꺼진 두 뺨 사이에 지배욕에 불타는 모습으로 높이 솟아 있고, 단도로 자른 듯한 좁은 입술은 아주 드물게만 웃음지었을 것이 분명하다. 깊이 가라앉은, 메마른 젯빛 피부에 따뜻한 살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내면의 불길이 흡혈귀처럼 뺨에 있는 핏기를 다 빨아먹은 듯, 두 뺨은 주름지고 병들고 창백하다. 이 두 뺨이 격렬한 분노의 불길로 활활 타오르는 데에는 몇 초도 안 걸릴 것이다. 길게 흩날리는 예언자 수염이 이 성마르고 노란 얼굴에 남자다운 힘의 모습을 주랴고 하지만 헛일이다. 이 수염도 생기나 풍만감은 없다. 그것은 하나님처럼 강력한 모습으로 내려뜨려지지 못하고 얇은 다발을 이루며 암벽에 돋아난 빈약한 관목더미 같다. 자기 자신의 정신에 의해서 타버리고 소모되어버린 열렬한 설교자, 칼뱅은 그런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너무나 지치고 너무나 긴장되고 자신의 열의로 인해 소모되어가는 이 인간에 대해 동정심이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다가 문득 그의 손을 보고는 깜짝 놀라게 된다. 바싹 야위고 살집도 색깔도 없는 손, 차갑고 뼈마디가 불거져나온 손, 독수리 발톱처럼 한 번 움켜진 것은 강하고 욕심스러운 뼈마디로 꽉 움켜잡을 것 같은 손, 한 번이라고 부드럽게 꽃을 어루만지고 여인의 따뜻한 육체를 애무했으리라고는 생각되어지지 않은 이 앙상한 손. 그것은 분노한 사람의 손이며, 그 손만 보고도 칼뱅이 일생 동안 지녔던 지배하고 감독하는 위대하고 잔인한 힘을 짐작하게 된다. 칼뱅의 얼굴에는 빛도 없고, 기쁨도 없다. 얼마나 고독하고 거부하는 얼굴인가! 냉혹한 요구와 경고만 하는 이 사람의 그림을 누군가가 자기 방의 벽에 붙여 놓고 싶어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는다. 그랬다가는 입에서 나오는 숨결이 싸늘하게 식어버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인간중에서 가장 기쁨을 모르는 사람이 눈뜨고 지켜보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