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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종교에서 행위성의 유형

방가房家 2025. 6. 30. 00:55

David Morgan, <The Thing about Religion: An Introduction to the Material Study of Religions> (Chapel Hill: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Press, 2021), 9-19.

데이비드 모건은 신유물론 이론들을 종교학적으로소화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론적 논의를 매우 쉬운 언어로, 종교학자들에게 익숙한 사례를 통해 풀어낸다. 그러한 서술은 성근 부분도 있으나, 적어도 연구자에게 힘을 준다. 그는 서론에서 행위성의 형태들”, 즉 종교적 사유와 실천에서 사물이 행위성을 획득한다고 일컬어지는 방식을 여섯 개의 유형으로 나누어 제시하였다. 중첩되는 부분도 있지만, 내가 고민하는 부분을 포함한 내용으로 유용하다. 여섯 유형은 다음과 같으며 그 아래는 이를 해설한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1. 초자연적 존재가 어떤 사물에 행위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할 수 있다.
2. 의례적 처리를 통해 사물이 성화되어 힘을 갖게 될 수 있다.
3. 사물이 어떤 것을 닮음으로써, 그 유사성에 근거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4. 어떤 사물은 본질적으로 신성한 인물이나 장소와의 관계로 인해 힘을 지닌다.
5. 어떤 사물은 도구나 기구로서 인간 신체가 행위할 수 있는 능력을 증강하고, 도구와 협력함으로써 신체를 변화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6. 어떤 사물은 그 감각적 특성의 가치를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행위성의 형태들

201912,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주임사제 파트릭 쇼베는 프랑스 혁명 이래 처음으로 성당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자정 미사가 열리지 않을 것임을 안타깝게 발표했다. 대신 그 해 봄의 대화재 이후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던 대성당을 대신해, 인근의 생제르맹 로세르와(Saint-Germain l’Auxerrois) 성당에서 미사가 거행되었다. 위로 차원에서 화재에서 살아남은 대표적인 조각상 중 하나인 파리의 성모상’(Virgin of Paris, 도판 2)이 크리스마스 이브 미사를 위해 생제르맹 성당으로 옮겨졌다. 쇼베는 이 조각상에 새롭게 부여된 의미를 열정적으로 설명했다. “이것은 기적의 성모상입니다. 왜냐하면 화재 당시 대성당의 천장이 완전히 무너졌고 돌들이 사방에 흩어졌지만, 이 성모상만은 무사했기 때문입니다. 성모상은 자연스럽게 천장이 머리 위로 떨어져 완전히 파괴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성모상이 살아남은 것은 대성당과 그 신앙이 언젠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의 상징이 되었다. 쇼베는 성모상이 생제르맹 성당의 미사에 함께하는 것이 위안이 되었다고 전했다. “성모상은 노트르담에서 오랜 세월을 보냈습니다. 매일 35천 명의 순례자들을 지켜보았죠. 그분이 우리를 계속 앞으로 나아가게 해줍니다.”

도상 2에서 작동하는 행위성은 프랑스의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현존이다. 그녀가 그 화재에서 아무런 손상도 입지 않고 살아남을 확률은, 그녀의 안녕을 신적 행위의 표시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너무나도 작아 보인다. 성모 마리아, 즉 성모님께서 희망의 메시지로서 자신의 성상을 보호하였다. 쇼베가 시사했듯이 자연은 재난을 배제하지 않지만, 기적적인 개입이 이 조각상에 희망의 메시지를 부여하여 재난의 우연성에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을 거부하게 했다. 파리의 성모상은 바로 현실의 엔트로피적(무질서한) 본성을 거스른다는 점에서 특별한 사물이다. 조각상 외부의 행위성이 그 물질적 조건 속에 드러나 작동하고 있다.

만약 도상 2의 행위성이 조각상 외부의, 즉 신적 행위의 결과로 비롯된다면, 두 번째 형태의 행위성은 인간의 의례적 행동을 통해 발생한다. 이 형태의 행위성은 의례적으로 사물에 주입된다. 예를 들어, 힌두교의 사원 조각상에 신을 모시는 의례적 실천이 있다. 이는 자격을 갖춘 사제가 존경받는 고대 경전에 따라 정교하게 집행해야 하는 복잡한 의례 절차다. 그 결과, 도상 3과 같은 사물에 신의 현존이 자리 잡는다. 이 의례를 꼼꼼하게 연구한 리처드 데이비스(Richard Davis)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절차는 사제와 장인이 나무 조각을 찾기 위해 숲으로 답사 여행을 떠나, 원하는 신과 본래 닮은 표본만을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원재료가 확보되면, 조각가는 그 이미지가 신을 시각적·상징적으로 제대로 표현하도록 도상학적·도상측정학적 지침을 따라야 한다. 장인이 조각하는 동안, 사제는 신이 형상에 깃들도록 만트라를 외운다. 다음 단계는 눈 뜨게 하기라 불리며, 사제가 형상 표면에 눈을 그리고, 연고를 바르며, 청신(請神)하는 만트라를 외우고, 의례적으로 준비된 물질로 형상을 바른다. 이후 형상은 사원으로 옮겨져 신전 안에 설치되고, 사제는 신이 깃든 형상 앞에서 공식 예배를 집행한다. 이러한 신적 현존의 의례적 설치는 다른 종교 전통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인들은 미라로 만든 파라오의 영혼이 조각상에 깃들도록 의례적으로 준비했다. 기독교의 성찬식 역시, 사제의 의례를 통해 빵과 포도주에 신적 현존을 설치하는 비교 가능한 실천이다.

링감은 형상 없음(aniconic)’, 즉 신의 형상이나 얼굴을 나타내지 않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도상 3에는 기본적인 심상(心象)이 내포되어 있다. , 남근의 형태와 음경의 특징이 최소한으로 구분되어 나타난다. 이것은 또 다른 행위성의 양상, 닮음(likeness)’을 보여준다. 사물은 자신이 닮은 것, 즉 시각적이거나 다른 물리적 유사성에 근거해 보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모방적 행위성(mimetic agency)은 종교와 마법의 역사에서 매우 흔하다. 실제로 많은 주술이 닮음에 근거해 작동하는데, 프레이저(Frazer)는 이를 동종(同種) 주술또는 모방 주술이라 불렀다. 그리고 인간은 두려움, 존경, 신뢰, 욕망하는 대상을 닮은 이미지에 거의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닮음은 그 이미지가 나타내는 대상과 연관된 감정이나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힘을 가지고 있어, 이미지는 자신이 닮은 것처럼 사람들에게 작용한다.

또 다른 종류의 사물은 그 안에 특별한 현존을 지니고 있는데, 이는 초자연적이거나 인간이 부여한 것이 아니라 사물 자체에 본래적으로 내재된 것이다. 예를 들어, 성인의 치아, 머리카락, 뼈와 같은 성유물(relic)은 망자와 밀접한 연결을 지니기 때문에, 성유물 앞에서 기도하는 것은 곧 그 성인의 현존 앞에서 기도하는 것과 같다. 또 다른 유형의 유물은 신성한 나무, , 돌과 같이 의례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그 장소나 사물 자체에 본래적으로 깃든 힘이나 현존을 지닌 자연물이다. 예를 들어, 메카의 대모스크 중심에 있는 카바의 동쪽 모서리에 박혀 있는 검은 돌’(Black Stone, 도상 4)이 있다. 이 돌은 카바 안에 금속 보호막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카바를 덮는 검은 천(키스와, kiswa)이 걷히면 드러난다. 전승에 따르면, 이 돌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추방될 때 용서를 받을 수 있도록 천국에서 땅으로 내려온 선물이라고 한다. 이후 이브라힘(아브라함)과 이스마엘이 정육면체 신전을 세울 때 사용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원래는 흰색이었으나 메카 순례(하지, Hajj) 중 순례자들이 돌에 입을 맞추거나 손을 대면서 그들의 죄를 흡수해 검게 변했다고 한다. 630년 무함마드가 무력을 통해 메카를 점령했을 때, 그는 카바에 있던 360개의 우상을 제거해 신전의 고대 권위를 회복시켰고, 이로써 카바는 이슬람의 중심지가 되었다.

다섯 번째 행위성의 사례는 다양한 종류의 도구가 인간의 신체와 결합하여 신체를 다른 무엇으로 변화시키거나, 외형을 형성하거나, 수행 능력을 증강하거나, 신체의 연장으로 작동하는 힘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산업화 시대에 우리를 대신해 작동하는 기계 장치에 훨씬 더 익숙하다. 예를 들어, 리모컨은 텔레비전을 작동시키고, 자동차에 타면 자동 안전벨트가 우리를 고정시키며, 벽 스위치는 조명을 켜거나 끄고, 보철 기구는 결손된 신체 부위를 대체한다. 그러나 고대의 도구든 현대의 기술이든, 우리는 도구적 행위성(instrumental agency)을 인간의 신체와 협력하여 인간의 의지에 따라 작동하고, 인간의 행위 능력을 확장하여 신체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망치는 인간의 손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이 둘을 결합하면 인간의 행위성이 증강된다. 망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인간의 신체와 협력(말 그대로 함께 일함’)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둘이 함께할 때 각자만으로 있을 때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한다. 물리적 접촉은 도구적 행위성의 근본적 특징이며, 보통은 촉각, 후각, 미각과 같은 친밀한 감각을 통해 이루어진다. 물질이나 사물이 신체의 일부가 되거나, 심지어는 실제로 신체 안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화학 물질, 예를 들어 의식과 지각을 변화시키는 향정신성 약물도 도구적 행위성의 또 다른 사례이다. 이러한 예는 매우 많다. 종교적 물질문화 영역에서 예를 들면, 종교인이 입는 예복이나 승복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불교의 승려와 비구니들은 욕망의 세계로부터의 단절을 실천하고, 다른 이들에게 자신들이 일반인과 다름을 알리며, 특히 시주나 공양을 위한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해 승복을 입는다. 도상 5의 미얀마 승려들은 테라바다 불교 전통에서 선호하는 주황색 승복을 입고 있다. 가사(袈裟: 승복의 세 겹 중 겉옷)는 신체를 감추도록 설계되어, 신체를 드러내거나 주목시키기보다는 승려의 금욕적 임무와 지위에 복종시키는 역할을 한다. 승복은 계급을 표시하는 무늬나 디자인이 없는 경우가 많으며, 전통적으로 승려는 세 벌의 승복만 소유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의복은 사찰 내에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대중 앞에서는 개인이 아니라 수행자로서 승려를 드러내는 통일된 사회적 신체를 만들어낸다. 승복은 승려와 비구니가 정식으로 서원을 할 때 의례적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그 가치를 부여받지만, 승원 내의 신체와 재가신자에게 미치는 영향은 역사적으로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신심에서 비롯한다. 승복은 단절을 실천하며, 원래는 작은 천 조각들을 이어 만든 누더기 천으로 구성되었다.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행위성의 범주는, 인간 관찰자에게 보이거나 들림으로써 영향을 미치는 사물이나 물리적 조건에 관한 것이다. 이 행위성의 방식은 심미적(aesthetic)’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이 용어는 그리스어로 지각또는 감각을 뜻하는 말에서 유래했다. 심미적 행위자는 정보를 전달하는 상징이나 기호로서도, 물리적 접촉을 통해서도 작동하지 않는다. 대신, 시각적·청각적 지각을 통해 감정을 형성한다. 흥미로운 예로는, 12세기 파리의 고딕 양식 수도원 생드니(Saint-Denis)의 내부와 정교하게 제작된 물품들을 들 수 있다. 이 수도원은 쉬제르(Suger) 수도원장의 지휘 아래 건축되었다. 이른바 샤를마뉴의 관(Crest of Charlemagne, 도판 6)’1세기의 보석과 조각된 크리스털로 구성되어 9세기에 조립된 것이다. 이 관은 제단에 놓인 패널 또는 스크린의 일부였으며, 그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다. 그 정교한 아름다움은 지금도 인상적이다. 1143년에 쉬제르는 이 교회의 건물과 장식품, 그리고 샤를마뉴의 관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모든 보석이 당신을 감쌌습니다. 홍옥, 황옥, 벽옥, 황수정, 오닉스, 녹주석, 사파이어, 석류석, 에메랄드. 보석의 특성을 아는 이들에게는, 이 중 어느 것도 빠짐없이(유일하게 석류석만 제외하고) 풍부하게 존재함이 명백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하느님의 집의 아름다움에 기뻐하며—다채로운 보석의 아름다움이 나를 외부의 근심에서 벗어나게 하고, 가치 있는 명상이 나를 이끌어, 물질적인 것에서 비물질적인 것으로, 다양한 신성한 덕목을 숙고하게 합니다. 그러면 나는 마치 이 우주의 낯선 영역에 거주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곳은 완전히 지상의 진흙 속에 있지도, 완전히 천상의 순수함 속에 있지도 않으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인해 나는 이 하위 세계에서 더 높은 세계로 ‘상승적으로’ 옮겨질 수 있습니다.”

쉬제르는 그의 동시대인들처럼, 보석에 특정한 고유한 힘이 있다고 여겼다. 이는 앞서 유물의 행위성에서 설명한 바와 유사하다. 어떤 이들은 보석의 색이 유익한 효과를 낸다고 가르쳤다. 예를 들어, 파란 사파이어는 열과 통증을 완화하고, 자주빛 자수정은 지혜를 돕고 악을 막으며, 녹색 에메랄드는 재물을 늘리고, 붉은 루비는 건강을 증진하고 독을 막는다고 여겼다. 어떤 이들은 실제로 보석을 갈아 그 고유한 효능을 얻기 위해 섭취하기도 했다. 이는 보석의 행위성을 약리학적 틀에서 볼 수 있게 하지만, 실제로는 보석의 효과가 풍부한 전승과 보석에 관한 문헌에 대한 지식 체계 속에서 작동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또한 보석과 교회 장식품들이 중세인들에게 작용한 또 다른 방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름다움, 즉 시각적·촉각적 매체와 디자인, , 보석, 정교하게 주조된 청동, 제단과 아치, 높이 솟은 천장 등이 인간을 감동시키는 능력이었다. 쉬제르는 이를 상승적 방식(anagogical manner)’이라고 불렀다. , 감각적 아름다움이 관찰자를 세속적 세계에서 벗어나 영적 관조의 상태로 이끈다는 의미다. 보석의 힘은 심미적 동력, 즉 아름다움을 통해 보는 이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예술의 행위성이다. 다시 말해, 유물의 고유한 힘이 치유와 기적을 일으키는 것과 더불어, 어떤 사물의 감각적 특성은 심미적 쾌감, 경이, 몰입을 통해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쳐, 일상에서 천상으로 마음을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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