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 성공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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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일하는 곳에서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를 ‘설득’해야 하는 일이 왕왕 있다. 그래서 이런 책도 찾아보게 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정보는 많지만 건질 것은 많지 않은 책이었다. 정말 중요한 내용(인문학이 어떻게 그들의 성공에 기여했는가?)은 조금 언급된 내용으로 유추할 수밖에 없다. 저자의 인문학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탓에 핵심에 대한 취재가 잘 되지 못한 탓이다. 게다가 종교학 사례가 책의 1장에 조금 나오는데 그친 아쉬움도 있다.(사실 내가 책을 산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는데). 종교학 사례는 다음과 같다.
단순화해서 말하면 이들이 취업한 첫 번째 이유는 이들이 그나마 스탠퍼드를 나왔기 때문이고(어렵게나마 취업한 것은 동문의 도움이 컸고, 학교가 실리콘 밸리 근처에 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들이 인문학"만" 한 것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컴퓨터 수업도 들었기 때문이다. 나쁘게 표현하자면, 인문학이 낯선 분야 개척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 인문학이 실생활과는 먼 뻘짓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분야에 적응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책의 성공담은 아이티산업의 초창기에 해당하는 것이 많고 지금처럼 분야가 확립된 이후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인문학 중에서도 가장 뻘짓인 종교학이야말로 4차산업시대를 대비한 학문이라는 주장도 가능할 것이다! 군대에서 한 삽질이 살아가는 데 통찰을 주었다는 위안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스탠퍼드 졸업자들도 문송하기는 마찬가지라는 사실만 확인한 책이었다.